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빵집에서 직원들이 빵을 굽고 있다. 이 빵집 주인은 에너지 가격이 2배 오르는 정도는 버틸 수 있지만 3~4배까지 오르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로 유럽이 혹독한 겨울을 맞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 폭등 여파가 벌써부터 서민과 자영업자, 농민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부 유럽에서는 주민들이 겨울을 대비해 땔감으로 쓸 나무를 모으고 있고, 많은 자영업자는 에너지 가격을 견디다 못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불가리아에서는 인구 700만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나무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최근 나무를 구하는 사람이 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 통계청에 따르면 이 나라 인구의 25% 정도가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주민의 절반이 중앙 난방을 이용하는 수도 소피아에서는 난방비가 40% 가량 치솟으면서 대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은퇴한 회계원인 그리고르 일리예프(68)는 최근 중앙 난방을 포기하고 냉난방기를 새로 구했다. 그는 “기계 값이 꽤 비싸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빵집, 식당 등 자영업자들도 뛰는 에너지 비용에 애를 먹고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 식당 2곳을 운영하는 클라라 아우렐은 “낮 동안에는 전원을 끄고 난방도 몹시 추운 날만 하며 물도 아끼는 등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며 “이제 남은 건 음식 가격을 올리는 것뿐”이라고 하소연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촌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에스테 로보즈는 최근 제품 가격을 10% 올렸는데, 에너지 가격이 더 오르면 영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는 “에너지 가격이 2배 오르는 정도는 버티겠는데, 3~4배까지 오르면 가게를 계속할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유럽에 비해 부유한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도 폐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빵집 체인을 하는 안드레아스 슈미트는 최근 빵을 굽는 오븐을 줄이고 냉장고에 보관하는 식자재도 줄여 에너지 사용을 5~10% 정도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0만유로(약 4억1280만원) 수준이던 에너지 비용이 내년에는 110만유로(약 15억1372만원)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변의 작은 빵집들은 사업 포기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과일·채소 재배 농가들도 같은 위기에 처했다. 로테르담 인근에서 6대에 걸쳐 피망과 블랙베리를 기르는 바우터르 반덴보스는 “오랜 기간 애써서 쌓은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계속 남으려고 버티고 있다”며 “최근 온실의 단열을 강화하고 온실 온도를 낮추는 등 ‘생존 태세’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유럽 가스의 기준이 되는 네덜란드 티티에프(TTF) 가스 선물 가격은 지난해 9월말 메가와트시(㎿h)당 70유로 선을 유지했으나,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지난달 말에는 5배 가량인 340유로까지 치솟았다. 그 이후 꾸준히 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해 전의 2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스값 폭등은 곧바로 전력 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의 집계를 보면, 지난달말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도매 전기 요금은 한해전보다 5~6배 높은 ㎿h당 최저 155유로에서 최고 544유로를 기록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