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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일대일로 최전선 타지키스탄…중, 자원 이어 안보까지 진격

등록 2022-09-22 08:00수정 2022-09-22 09:27

2017년 9월17일 중국과 타지키스탄 국경 수비대가 양국 국경 지대에서 공동 순찰을 하는 모습을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 중국 국방부 누리집
2017년 9월17일 중국과 타지키스탄 국경 수비대가 양국 국경 지대에서 공동 순찰을 하는 모습을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사진. 중국 국방부 누리집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 중심가 곳곳엔 ‘일대일로 윈윈협력’ ‘중-타 우호, 만고장청’ 같은 문구가 걸려 있다. 이 나라 의회와 정부 청사도 중국 건설사들이 새로 건설 중이다. 소련 시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들을 허문 자리에 중국 기업들이 짓는 고층 건물들이 우뚝우뚝 일어서고 있다. 인구 1천만명의 조용한 산악국가에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맹렬하게 진격하는 모습이다.

2013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로 시작된 일대일로는 과잉 생산, 과잉 자본의 위기에 빠진 중국이 해외에서 새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확보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장기 전략 프로젝트다. 올해 10년째를 맞아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등에선 ‘부채의 덫’ 논란을 일으키며 반발에 부딪히고 있지만,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기세는 여전히 파죽지세다.

지난달 27일 두샨베에서 제2도시 후잔드(호젠트)로 가는 길 양편은 험준한 암벽 산길이었다. 중국 기업들이 새로 포장한 도로 위에서 중국 산시자동차(SHACMAN)의 최신형 트럭들이 석탄 등을 가득 싣고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국 기업들은 곳곳에서 석탄과 금 등을 채굴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노천광산의 한 곳에서 채굴이 끝나면 그곳을 버리고 아래로 내려가며 점점 강에 가까운 곳에서 채굴을 하고 있었다. 석탄이 흘러내린 검은 자국들이 강에 닿을 듯 곳곳에 얼룩져 있었다. 주변 마을의 식수 오염 우려가 커 보였다.

그래도 중국제 트럭을 모는 운전수들은 대부분 현지 타지크인들이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서 현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중국인들을 데려가 일자리를 독식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변화로 보였다. 중국의 투자로 도로 등 인프라가 개선되는 데 대해서도 긍정적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운전기사 나우루스는 “이란 회사가 지은 터널은 엉망인데, 바로 근처에 중국 회사가 건설한 터널은 우수하다”며 “최근 중국 회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고, 중국인들은 일을 유능하게 한다”고 칭찬한다. 이 도로에 중국이 건설한 터널의 이름은 ‘우의터널’이다. 중국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되면서, 중국에서 공부를 했다며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거는 타지키스탄 청년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타지크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이웃 나라인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에선 반중국 여론이 확산하고, 신장위구르 무슬림 탄압과 부채 증가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중국 시위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타지키스탄은 아직까지 반중 시위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지난 8월 말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중심가에서 중국 건설사가 짓고 있는 대규모 건물 공사 현장. 두샨베/박민희 기자
지난 8월 말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중심가에서 중국 건설사가 짓고 있는 대규모 건물 공사 현장. 두샨베/박민희 기자

타지키스탄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키워드는 신장위구르다. 타지키스탄은 동쪽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8월31일 발표한 ‘신장위구르 인권 조사 보고서’에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변경 지역에서 ‘분리 독립’의 싹을 자르려 사실상의 강제수용소인 ‘직업교육센터’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1100만 위구르인을 대상으로 강제 동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은 중국 정부가 이 시설에서 “법적 절차 없이 위구르인들을 수감하고 고유 종교와 문화를 말살한 채 공산당 사상을 주입하고, 구타·고문·성폭행 등을 저지르고 있다”며 “이는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중국은 이런 비판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맞서면서 위구르인들이 아프간으로 탈출하거나 타지키스탄 내 이슬람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 저항 활동에 나설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런 ‘안보 우려’로 인해 양국 간의 군사 협력이 긴밀해지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고 타지키스탄도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차원의 군사훈련에 더해 중국-타지키스탄 간의 양자 연합 군사훈련도 여러 차례 이뤄졌다. 특히 중국 신장, 아프간과 국경을 마주한 타지키스탄 북서부 와한(와칸)회랑 지역 샤이마크에 중국이 2016년께부터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다. 두 나라는 이를 부인했지만, 위성사진 등을 통해 볼 때 병력 주둔은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나아가 지난해 8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한 뒤 중국은 와한회랑의 또 다른 지역인 바혼(Vakhon)에 경찰 전초기지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했고, 타지키스탄이 이를 수용했다고 현지 언론 <아시아플러스>가 전했다. 중국-중앙아시아 관계의 전문가인 테무르 우마로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중국은 군대가 아닌 인민 무장경찰을 안보 영향력 확대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들이 타지키스탄의 경찰·사법기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타지키스탄 경찰과 국경을 순찰하거나 위구르인들을 강제 송환한다는 소식도 있다. 동투르키스탄망명정부(ETGE) 등 해외 위구르인 단체들은 지난해 6월 중국이 타지키스탄 군경과 협력해 2016년부터 이곳의 위구르인 약 3천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했다며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조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같은 안보 협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경제 협력이다. 시 주석은 2019년 6월15일 두샨베에서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만나 정부 청사와 의회 청사를 지어주는 건설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되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공짜가 아니다. 중국이 타지키스탄에 빌려준 돈으로 도로·철도·발전소를 짓지만, 돈은 공사를 맡은 중국 기업들한테 돌아가고 부채는 타지키스탄에 남게 된다. 올 1월 현재 이 나라의 대중국 부채는 11억달러(약 1조5300억원)로 전체 대외 부채(32억달러)의 3분의 1에 이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최빈국인 타지키스탄은 부채를 상환할 수 없을 때마다 자원 개발권을 중국 기업들에 넘겨 왔다. 한 예로 2016년 중국 전력회사 터볜전력(TBEA)은 두샨베에 3억4900만달러를 들여 발전용량이 400㎿에 이르는 화력 발전소를 완공했다. 이 가운데 타지키스탄 정부는 174만달러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북부 아이니 지역 금광 2곳 개발권을 중국 기업에 주는 것으로 정산했다. <유라시아넷>은 타지키스탄은 석탄·금·희토류 등이 풍부한데 금 채굴권의 80%는 이미 중국 회사에 넘어갔다고 전했다.

1994년 이후 30년 가까이 철권통치를 이어온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은 비판적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우마로프 연구원은 “타지키스탄에서 중국의 활동에 대한 내용은 국영 언론에 의해 매우 조심스럽게 통제되고, 양국 간에 맺어진 협정의 상세 내용도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며 “타지크인들은 중국이 자기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군 기지에서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타지키스탄 정부는 20년 넘게 아프간 문제와 테러리즘의 위협을 계속 강조하면서, 중국이 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자국 안보를 지원하는 긍정적 활동이라 국민들이 여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인근에서 중국 광업기업이 석탄을 채굴하고 있다. 두샨베/박민희 기자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인근에서 중국 광업기업이 석탄을 채굴하고 있다. 두샨베/박민희 기자

이런 상황 속에서 시 주석은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뒤 ‘외교 무대’에 복귀하는 곳으로 중앙아시아를 택했다. 14일 카자흐스탄, 15~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방문해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각국, 인도·이란·튀르키예 정상들과 만나 ‘반미 공조’를 확인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 중인 푸틴 대통령이 중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중화 제국의 부흥’을 꿈꾸는 중국의 압도적 영향력이 약화된 러시아의 공백을 채울 것임을 예고하는 무대였다.

두샨베·후잔드·판자켄트(타지키스탄)/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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