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저자 살만 루슈디가 지난 2017년 11월15일 뉴욕에서 68번째 열린 전국 도서전에 참석한 모습. AP 연합뉴스
12일 인터뷰 도중 흉기 피습을 당한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사흘 만에 대화가 가능하고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가족과 대리인이 전했다. 미국, 캐나다 등 각국 정상들은 그의 표현의 자유는 정당하다며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14일(현지시각) 루슈디의 출판 대리인인 앤드루 와일리는 <에이피>(AP) 통신 등에 “루슈디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으며 회복 과정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부상이 심해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그의 상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대화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루슈디의 가족들도 이날 성명을 내 경찰과 의사, 루슈디를 지지하는 독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루슈디의 아들 자파르 루시디는 성명에서 “그의 삶을 바꿀 만큼 심각한 부상이지만 평소 거침없던 그의 유머감각은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 의사뿐만 아니라 루슈디를 방어하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든 관중들에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인도계 영국 작가 루슈디는 자신의 작품이 신성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슬람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은신하며 지냈다. 하지만, 12일 박해 위협으로 추방된 작가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인 셔터쿼연구소의 공동 창설자인 헨리 리스(73)와 뉴욕에 있는 연구소에서 인터뷰 도중 무대 위로 돌진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린 뒤 중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송 당시 숨을 쉴 수 없어 인공호흡기에 의지했고, 실명 위기에 빠진 상태였다.
전 세계 작가들과 정치인들은 루슈디에 대한 피습을 일제히 비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이것은 비열한 짓이다. 미국과 우리의 파트너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여 이러한 위협에 맞서겠다. 우리의 결의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하루 전 성명에서 “우리는 루슈디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트위터에서 “그 누구도 그들이 쓴 글을 근거로 위협을 당하거나 해를 입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공식 언급을 피했지만, 이란 내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이날 이란 국영 일간지 <이란 데일리>는 이번 공격을 “신성한 법령을 시행한 것”이라고 일컬으며 극찬했다. 이란 보수지 <케이한>(Kayhan)은 이번 피습이 이슬람 교도들의 분노를 부분적으로 잠재울 “신의 복수”라고도 표현했다. 반면, 이란인들이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에는 1989년 <악마의 시> 저자를 처형하라는 ‘파타와’(이슬람 성직자가 발표하는 법적인 명령)를 발표한 이슬람 지도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하며 루슈디에 대한 동정과 위로의 말을 게재했다.
한편, 루슈디를 피습해 2급 살인미수, 2급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하디 마타르(24)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레바논계 부모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났다. 미국 검찰은 소설이 출간된 지 약 10년 후에 태어난 마라트가 독자적으로 이번 피습을 계획하고 행동했는지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에이피> 통신은 전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한 검사는 “정당한 이유 없이, 사전 계획하에 목표 대상을 피습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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