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던 이들이 북아일랜드 힐스버러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방문에 앞서 ‘북아일랜드 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힐스버러/AP 연합뉴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브렉시트)하면서 맺은 ‘북아일랜드 협약’의 일부 내용을 일방적으로 깨는 법안을 13일(현지시각) 발표해, 유럽연합과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20년 1월 유럽연합을 공식 탈퇴하면서 맺은 ‘북아일랜드 협약’의 일부 내용을 폐기하는 내용의 ‘북아일랜드 협약 법안’을 이날 공개했다. 이 법안은 영국 본섬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는 물품 가운데 최종 목적지가 북아일랜드인 것에 대해서는 통관 절차를 생략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영토지만,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1998년의 벨파스트 협정을 존중하기 위해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연합 단일 시장에 남았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과 영국은 영국 본섬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물품 통관 절차를 두기로 합의했다. 영국 본섬과 북아일랜드 사이 바다에 유럽연합의 경계가 설치된 셈인데, 영국 정부의 법안은 이 합의를 깨는 것이다.
법안은 또 북아일랜드에서 유통되는 제품에 대해 영국 또는 유럽연합의 품질 규격 중 하나를 선택해 적용할 수 있게 하고, 북아일랜드 협약 관련 분쟁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아니라 별도의 중재 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자신이 서명한 북아일랜드 협약을 일부 폐기하려는 것은 “진정으로 예외적인 상황” 때문이어서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법률적 입장문도 함께 내놨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협약 폐기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이 자치 정부 구성을 저지하는 등 북아일랜드에서 정치·사회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유럽연합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유럽연합은 재협상은 없다고 못박았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성명을 내어 “재협상은 비현실적인 데다가 북아일랜드 주민들과 기업들에게 법률적 불확실성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아르티이>(RTE) 방송에 “이 법안이 제정되면 사실상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영국 정부를 빼고는 이것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이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유럽연합과 북아일랜드 협약 내용 수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영국이 법안 제정을 강행할 경우, 유럽연합과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고 자칫하면 무역 보복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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