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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다시는 ‘전쟁일기’를 쓰고 싶지 않습니다”

등록 2022-05-21 08:59수정 2022-05-21 14:49

[한겨레S] 살롱 드 여울
<전쟁일기>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우크라서 아이들만 데리고 피란…참상 옮긴 그림 국내서 세계 첫 출간
“사방에 폭격,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녀 팔에 생년월일 적어”
두려움 극복하려고 쓴 그림일기…“꽃과 천사 그리던 때 돌아가고파”
&lt;전쟁일기&gt;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책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남긴 기록으로, 다시는 전쟁 이야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레벤니크가 정여울 작가와 화상 인터뷰를 하는 장면. 그 옆으로 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이승원 작가
<전쟁일기>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는 책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남긴 기록으로, 다시는 전쟁 이야기를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레벤니크가 정여울 작가와 화상 인터뷰를 하는 장면. 그 옆으로 딸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이승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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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질문이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그 상처를 더 깊이 건드릴까, 혹시라도 이미 아픈 곳을 또 찌를까 봐. 하지만 상처를 건너뛰고 두루뭉술하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질문이 아팠고, 모든 대답은 더욱 아팠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8일째 되던 날, 계엄령이 떨어진 우크라이나에 사랑하는 남편과 어머니를 남겨두고 아들, 딸, 반려견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바로 옆집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가족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픈 조부모를 걱정하며 우크라이나를 떠나려 하지 않았고, 남편은 계엄령으로 발이 묶였다. 계엄령이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는 18살에서 62살까지 남성은 나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대통령 젤렌스키까지 앞장서서 총을 든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온 힘을 다해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

기차에서 서서 가야 할까 봐 아이들의 배낭까지 버린 채, 천신만고 끝에 두번이나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에 임시난민으로 정착한 올가는 말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루아침에 피란민이 된 수백만명의 여자들, 모두가 단 한명도 남편이 없었어요. 모두 남편과 생이별하고, 아이들만 데리고 국경을 넘은 거죠.” <전쟁일기>의 번역자 정소은 선생의 통역으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여러번 애타게 엄마를 불렀다. 낯선 나라에서 아빠와 집과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오직 엄마에게만 의지하는 아이들의 절박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lt;전쟁일기&gt;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가 가족의 삶을 연필화로 기록한 그림일기다. 우크라이나에 남아야 했던 남편과 피란을 떠나는 가족들이 헤어지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가 가족의 삶을 연필화로 기록한 그림일기다. 우크라이나에 남아야 했던 남편과 피란을 떠나는 가족들이 헤어지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lt;전쟁일기&gt; 속 우크라이나에 남아야 했던 남편과 피란을 떠나는 가족들이 헤어지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 속 우크라이나에 남아야 했던 남편과 피란을 떠나는 가족들이 헤어지는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lt;전쟁일기&gt; 속 포탄 소리에 깜짝 놀라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딸의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 속 포탄 소리에 깜짝 놀라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딸의 모습. 이야기장수 제공

연필과 노트를 챙겨 대피한 까닭

―작가님,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전쟁일기>를 여러번 반복해 읽으면서 놀란 대목이 많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아이들 손목에 이름과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적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작가님 자신 손목에도 생년월일을 적으며 사망에 대비해 신원확인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면도 가슴 아팠습니다. 평소에는 화려한 색채로 행복한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요정들을 그리는 작가님이 오직 연필 한 자루에 의지해 급박하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도 아팠습니다. 화가에게서 가장 소중한 색채를 앗아가는 것이 전쟁의 또 다른 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쟁일기>는 이전의 그림책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요?

“제가 연필과 노트를 챙겨서 지하실에 내려갔던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이었지요.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화려한 컬러가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화가 입장에서 가장 큰 차이는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평소 그림을 그릴 때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까지 철저히 계획을 하거든요. 하지만 <전쟁일기> 때는 이것이 책이 될 거라는 생각조차 없었지요. 5분 이상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거든요. 그 순간 제 감정을 쏟아붓는 즉흥적인 그림이었어요. 단 한장도 미리 계획할 수 없는 그림들이었어요.”

―물론 남편과 어머니가 제일 그리우시겠지만, 또 우크라이나의 그리운 장소, 그리운 사물들은 무엇인지요?

“우리 가족은 매년 여름 별장에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여름별장 ‘다차’는 옛 소련 지역들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나누어준 시골 땅이었습니다. 각종 채소를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것이 옛 소련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이었고, 우리 가족은 무려 30년 동안 ‘다차’를 가꾸었어요. 그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져버렸습니다. 바로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거든요. 언제 돌아가서 그 정든 식물들을 볼 수 있을지,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두번째는 제 소중한 그림 컬렉션입니다.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거나 선물로 받아서, 집에 화려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전쟁통에 급히 떠나오느라 작품들을 챙기지 못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또 하나는 우리 아이들 그림이에요. 아기 때부터 그린 그림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는데, 피란의 급박함 때문에 한장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모든 사물이 그립지요.”

―아이들의 팔에 생년월일과 연락처를 적으셨을 때 심정이 어땠을지, 여쭤봐도 될까요?

“전쟁이 터졌던 날 우리는 새벽 5시께 폭격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어요.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아랫배에 뭔가 커다란 응어리가 뭉치는 듯한 통증과 두려움이 자리잡았어요. 급하게 짐을 챙겼지만 이미 너무 늦은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망칠 수도 없었지요.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곳에서 폭격이 터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자,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의 생년월일을 팔에 적은 거예요. 피란열차 안에서도 저 같은 젊은 엄마들이 수십개의 종이쪽지에 연락처를 적어 아이들의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지요.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어떻게든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요. 폭격으로 죽으면, 신원이라도 밝혀질 수 있도록요.”

“다시는 전쟁 얘기 쓰지 않기를”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가족사진. 이야기장수 제공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가족사진. 이야기장수 제공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던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아들. 이야기장수 제공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던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아들. 이야기장수 제공

―아이들에게 이 전쟁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주셨나요?

“2017년생인 어린 딸 베라가 전쟁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전쟁이라는 이름의 놀이야’라고 대답을 했어요. 이 무서운 전쟁의 진실을 설명할 수는 없었거든요. 분명 놀이라고, 게임이라고 둘러댔지만, 아이는 정확히 그 공포를 이해하더군요.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다음날 아이들은 이미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거든요.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지하실로 뛰어 내려가서 대피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포탄이 떨어지는 집 바깥에 나가는 건 무서워했지만, 대피 장소인 지하실에 내려가는 건 즐거워했어요. 왜냐하면 지하실은 새로운 곳이고 안전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거든요.”

―<전쟁일기>에서 폴란드에서 30년째 살고 있는 러시아 여성이 올가 가족의 기차표 끊는 일을 도와주셨다는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었어요. 사람은 특정 민족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 올가 가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도와주는 러시아 여성의 얼굴에서 수호천사를 보았다는 것. 우리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마음도 바로 이런 조건 없는 환대의 마음이 아닐까요?

“맞아요. 저는 민족이나 소속이 아닌 행동이 사람을 정의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어요. 제가 폴란드를 거쳐 불가리아로 오게 되기까지, 제 그림을 좋아하고 제 책을 아껴주던 독자들의 힘이 컸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 상황을 이해하시고 이것을 책으로 출간해보라고 독려해주신 것도 독자들 중 한명이었지요. 수만명의 인스타 팔로어들이 우리 가족의 안부를 걱정해주고, <전쟁일기>를 낼 수 있게 도와준 정소은 번역자나 이연실 편집자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의 독자들도 저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지요. 아무리 무시무시한 전쟁 상황 속에서도, 저는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준 모든 분들이 저에게 수호천사였지요.”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말씀하시니까, 제가 오히려 용기와 위로를 얻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불가리아라는 낯선 땅에서 무사히 잘 적응하고 있는지요? 아이들은 어떻게 이 상처를 극복하고 있는지, 걱정이 됩니다.

“저희 아이들이 겪은 일들은 결코 어린 시절에 경험해서는 안 되는 트라우마가 되었어요. 아이들은 전쟁을 몰라야 하고,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제 아이들은 다행히도 나름대로 밝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어서 다행스럽지만, 아직은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피란길에서 첫번째로 도착한 곳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였는데, 그곳에서 좋은 호텔을 제공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편안한 호텔에서, 딸은 오랜만에 보는 멋진 침대에 눕지 않으려고 했어요. 침대가 창문 옆에 있었거든요. 창문 옆은 폭격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지요. 폴란드는 안전한데도, 아이는 한사코 누우려 하지 않아서 침대 위치를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제 아이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징징거리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특유의 공포와 상처받은 느낌은 선명하게 남아 있지요.”

전쟁 이전 평온했던 때의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 이전 평온했던 때의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의 작가 프로필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웅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믿습니다. 인생에서 저는 한계가 아니라 기회를 봅니다.” 이 문장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작가님은 또 다른 글쓰기의 원동력을 발견하신 것일까요?

“전쟁에 대한 글은 다시 쓰고 싶지가 않아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남긴 기록이 <전쟁일기>이지만, 저는 이제 다시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서 예전의 나로 돌아가 아름다운 정원이나 천사나 귀여운 여우 가족을 그리고 싶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알려주세요. 그리고 푸틴에게도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전쟁도 우리의 소중한 인간관계를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전쟁도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무너뜨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세상에 증오가 가득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증오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서로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푸틴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는 ‘특별군사작전’이 아니라 ‘전쟁’일 뿐이라고. 제발 이 끔찍한 전쟁을 멈춰달라는 것입니다. 푸틴, 당신 한 사람의 그릇된 욕망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전쟁은 죄 없는 어린이들, 힘없는 여성들의 인생을 산산조각 내고 완전히 부서뜨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반전’ 실천하는 이들

<전쟁일기>를 만든 이연실 편집자(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는 작가의 그림과 손글씨를 찍은 휴대폰 사진을 받아 책을 단 보름 만에 만들어낸 과정이야말로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고 전한다. 그림이 워낙 급박하게 그려진 것이라 좀 더 정교하게 수정해볼 의향은 없는지 물었는데, 작가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작가는 이 그림을 채색하거나 덧대어 고쳐서 ‘더 아름다워 보이게’ ‘더 잘 그린 것처럼’ 만들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색채를 빼앗기고, 캔버스를 빼앗기고, 모든 도구를 빼앗기고 연필 한 자루로 노트에 가냘픈 선으로 최소한의 뼈대만 남겨 그린 그림, 바로 이것이 전쟁 그 자체였다. 보통 그림책은 원화를 고화질로 스캔한 뒤 디지털 파일로 전환하여 책을 만드는데, 불가리아에서 이제 막 난민 생활을 시작한 작가에게 고화질 스캔을 부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작가에게 한장 한장 침대에 놓고 휴대폰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고, 신선아 디자이너가 그 휴대폰 사진에서 연필선의 농도까지 가늠하여, 하나하나 연필선을 휴대폰 사진에서 따서 교정지에 옮김으로써 <전쟁일기>는 만들어졌다.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대표작 ‘피리 부는 천사’. 이야기장수 제공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의 대표작 ‘피리 부는 천사’. 이야기장수 제공

<전쟁일기>의 번역료 전체를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부한 러시아 문화 전문가 정소은 선생은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까지도 이 갑작스럽고 명분 없는 전쟁에 분노하지만, 러시아 안에서 전쟁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면 신변이 위험해진다. 러시아 정부는 전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려 무기를 들었다고 주장하니까. 러시아에서 전쟁 반대는 곧 목숨을 거는 일이다. 정소은 선생은 말한다. “제가 아는 사람들이 부디 너무 많이 용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디 용감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오죽할까. 용감하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강간당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감한 사람들은 버려진 아파트에 갇힌 반려동물을 구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부수고, 국경을 넘어 어렵게 피란을 갔다가도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목숨을 걸고 주변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총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여성들까지도 사격을 배워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 ‘양심과 지성을 지키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절실하게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나치즘 치하에서도 나치에 동조하지 않은 독일인들’이다. 그들 덕분에 쉰들러의 리스트 속 유태인들처럼 목숨을 구한 유태인들이 있었으니까. 그들 덕분에 독일은 마지막 양심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나치에 동조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유태인을 지켜준 독일인들처럼, 러시아 당국의 신변 위협으로 이름조차 밝힐 수 없는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이 ‘잘못된 전쟁’에 분노하고 있다.

이 참혹한 세상을 바꿀 방법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작가의 대표작 ‘봄의 부케’. 이야기장수 제공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작가의 대표작 ‘봄의 부케’. 이야기장수 제공

올가는 말한다. “전쟁은 모든 것을 없애버리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남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길. 전쟁은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만, 사람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이연실 편집자는 말한다. “전쟁은 사람을 이토록 하찮게 죽이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은 이토록 고귀한 기록을 남긴다.” 올가의 아들 표도르는 평화롭게 지내는 것 같다가도 문득 슬픈 얼굴로 말한다. “엄마, 나는 불행해. 전쟁 때문에 난 불행해졌어.” 무엇이 이 해맑은 소년의 눈빛을 이토록 처절한 슬픔으로 물들였을까. 이제 알게 되었다. 푸틴의 탐욕으로 시작된 이 전쟁의 끝은 우크라이나의 패배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인류 전체의 승리가 되어야 함을.

우리는 있는 힘껏,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독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전쟁일기>를 구입할 때마다 수익금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적십자기금으로 보내진다. 우크라이나가 뭔가 잘못해서 러시아에 당했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려주자. 이 전쟁은 일방적인 러시아의 침공이며 우크라이나인들은 다만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 중이라고.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우리의 싸움으로, 나의 싸움으로 만들 힘이 있다. 타인의 아픔에 절절하게 공감하는 사람들만이 이 무정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작가. 개성 넘치는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꿈과 일상과 배움의 열정을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살롱이지요. 작가 정여울이 이 시대의 빛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속 깊은 정담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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