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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우리집은 하르키우”…줄리아는 가족 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등록 2022-03-10 18:59수정 2022-03-11 02:34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가다 : 폴란드 프셰미실역
정교회 성당 예쁘던 우크라 제2도시
러시아 막으려는 최고 격전지로 변해
남편·아버지 남겨놓고 딸과 국경 넘어
“승리와 함께 재회할 수 있게 기다리겠다”
8일 우크라이나 출신 줄리아(41·오른쪽)와 그의 딸(14)이 폴란드 프셰미실역에서 피란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받은 튤립꽃을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줄리아 모녀는 러시아군의 직접적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폴란드 서부 프셰미실로 피란을 왔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8일 우크라이나 출신 줄리아(41·오른쪽)와 그의 딸(14)이 폴란드 프셰미실역에서 피란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받은 튤립꽃을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줄리아 모녀는 러시아군의 직접적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폴란드 서부 프셰미실로 피란을 왔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우리 집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에요. 하르키우.”

8일 폴란드 프셰미실 기차역에서 만난 줄리아(41)는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왔다고 했다. 전쟁 닷새째인 지난달 28일 러시아군은 줄리아와 그 가족들의 보금자리인 하르키우를 향해 진격했다. 사람들은 방공호로 몰려갔다.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상황이 나빠지자 남편은 딸과 함께 폴란드로 가라고 했어요.” 남편은 우크라이나에 남아 싸우기로 결심했다. 지역 방어부대에 자원했다. 현재 이 지역에선 러시아군의 공세에 맞선 우크라이나군의 처절한 저항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하르키우는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다. 정교회의 성당 건물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러시아군이 쏘아댄 로켓에 맞아 2일 무너졌다. 평화롭던 도시는 한순간 전쟁터로 변했다. 교회는 물론 유치원과 학교 등 각종 건축물이 산산조각 났다. 광장은 불바다로 변했다. “러시아 침략자들이 어린아이와 민간인을 죽이고 교회를 파괴했어요.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

하르키우 외곽에 살고 있는 줄리아의 아버지도 고향에 남았다. 아버지 집 근처에는 군사 시설이 있어 특히 위험하다. 숨을 곳은 방공호뿐이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셔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어려워요.” 남편과 아버지를 고향에 남겨두고 떠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열네살 딸을 위해 어디로든, 어떻게든 가야 했다.

딸과 함께 폴란드로 가기로 결심한 줄리아는 지난 4일 다른 피란민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안전을 위해 무리를 이뤄 움직였다. 어느 날은 러시아군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지나기도 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딸의 손을 꽉 쥐었다. 시시때때로 ‘웽∼’ 하는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울려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신이 아니었다면 안전하게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폴란드 국경과 가장 가까운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 도착한 뒤 곧바로 폴란드행 기차에 올랐다. 고향을 떠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국경을 넘어 기차가 마침내 폴란드 프셰미실역에 다다랐을 때, 줄리아는 겨우 긴 숨을 ‘후’ 하고 내쉴 수 있었다. “처음엔 러시아가 우리를 공격하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가족을 두고 도망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화가 아주 많이 났어요. 그러고는 우울했고, 무력했어요. 슬퍼요. 여전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요.” 말갛던 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눈에는 물이 고였다.

줄리아와 딸은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일단 독일로 건너가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질 작정이다. “제 직업은 신경과 전문의인데요, 독일에 가서 곧바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독일에서 구직을 해볼 생각은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에 속해 있지 않아 자격증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할 게 많다. 당분간 정부와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도착하면 독일 사회에 적응하려 애쓸 생각이다.

모녀는 프셰미실에 도착하자마자 역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유심(USIM) 칩을 받았다. 독일에 사는 친구와 전화가 연결돼 9일 독일행 기차에 올랐다. 줄리아는 “상황이 나아져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남편을 만날 것”이라며 “승리와 함께 재회할 수 있길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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