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16일 이라크 모술의 한 식당에서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식음료 분야에서 로봇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다. REUTERS
우크라이나 사태로 주춤하지만 코로나19 확산 탓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미국 및 선진국 경제가 2021년부터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업들은 임금을 올려주겠다며 사람 구하기에 바쁘지만 노동자들은 손사래 치며 일자리를 마다하고 있다. 이른바 ‘대량 퇴사’(the Great Resignation)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2022년 2월1일 공개한 12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미국의 퇴사자 수는 433만8천 명으로 2.9%의 퇴직률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기록이었던 11월의 449만9천 명(퇴직률 3.0%)과 비교하면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시엔엔>(CNN)은 2021년 해고 등으로 퇴사자가 6890만 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무려 4740만 명이 ‘자발적’ 퇴사였다고 최근 보도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베이비붐 세대의 조기 은퇴, 삶의 질을 중시하는 2030세대의 구직 패턴 변화, 원격근무 확대 등 대량 퇴사 현상을 두고 원인 분석이 한창이지만 기업들의 구인난이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19에 따른 대규모 봉쇄와 감염, 연이은 대량 퇴사 현상으로 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는 기업들은 로봇을 투입하는 생산자동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기업들이 “자동화, 로봇과 인공지능(AI)을 선호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며 “냉담한 구직자, 안 좋은 일자리 확산, 자동화 기술 향상”이 로봇 수요의 ‘퍼펙트 스톰’을 만들어낸다고 최근 전했다. 투자회사인 글로벌엑스(Global X)의 제이 제이콥스 연구·전략 부문장도 ‘2022년 전망’에서 노동력 공급을 비롯해 공급망 붕괴로 “로봇 및 AI에 대한 지출이 상당히 급증하고 있다”며 “이제 미국에서 로봇 도입이 황금기로 가고 있다. 2022년은 로봇공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뒷받침하듯 자동화 생태계를 위한 무역단체인 ‘첨단자동화협회’(3A)에 따르면, 2021년 북미 지역에서 산업용 로봇 주문이 3만9708대(투자금액은 2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0년보다 28%나 증가한 것이다. 또한 이전의 로봇 주문 연간 최고 기록이었던 2017년의 3만4904대(투자금액 19억달러)보다 많다.
로봇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자동차업체들의 로봇 주문이 다른 산업 부문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2020년부터 다른 부문 기업들의 주문이 자동차업체 수요를 앞질렀으며, 2021년에는 이런 추세가 더욱 강해졌다. 로봇 주문이 가장 빠르게 증가한 업종은 금속, 식품, 소비재 쪽이었다.
코로나19와 대량 퇴사 등이 맞물린 급격한 자동화 추세는 오래된 화두를 다시 끄집어낸다. 로봇이 빈자리를 메우면 사람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없는가? 로봇 공습이 본격화하면서 인간은 결국 남은 일자리마저 로봇에게 빼앗기고 경제적 궁핍 속에 시달리는 이른바 ‘로보칼립스’(로봇으로 인한 종말) 시대를 맞을 것인가?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경제학자이자 경제사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AI 연구자인 마이클 오즈번이 2013년에 내놓은 논문 ‘고용의 미래’는 이런 우울한 전망을 그린 대표작이었다. 두 사람은 ‘컴퓨터화’로 “미국 고용의 47%가 위험에 처하고”,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임금은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저숙련 및 저임금 노동이 컴퓨터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며 생산직 노동, 상당수 사무 및 행정 지원 인력, 대다수 교통과 물류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팬데믹은 이런 경고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라는 확고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팬데믹 2년이 지난 현재, 자동화를 위한 글로벌 투자가 급증하지만 이로 인해 실업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부족에 시달리는 선진국의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특히 비숙련 노동자들의 일은 로봇으로 대체하기 쉬워 상대적으로 취약해 보였지만, 이들의 임금은 되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자동화가 쉬울 것으로 여겨졌던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일자리가 다른 일자리보다 더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도 아직 거의 없다는 것이다.
로봇과 일자리에 대한 기존 ‘상식’을 반박하는 새로운 연구도 나오고 있다. 필리프 아기옹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를 비롯한 4명의 연구진은 2022년 2월 초 논문에서 “자동화의 직접적인 결과는 기업 수준에선 고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동화는 기업의 이익을 증대함에 따라 기업이 규모를 확장하면서 ‘채용 확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옮겨가거나 좀더 노동집약적인 상품과 서비스에 초점을 맞출 여력을 얻는다. 이들은 프랑스 기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험적 연구 작업과 각국의 문헌을 토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박사학위를 밟고 있는 요나스 투흐쿠리와 동료들도 최근 핀란드 기업들을 연구한 결과 첨단기술 채택이 채용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물론 로보칼립스에 대한 이런 반박들이 ‘로보토피아’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도 “아기옹 교수도 인정하듯이 기업이나 산업 수준에서는 자동화가 고용을 증대할 수 있지만, 경제 전반적으로도 그럴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론적으로는 로봇을 채택한 기업이 시장의 우위를 차지해 경쟁기업들을 몰아내면 사회 전체적으로 가용한 일자리 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 도입으로 일자리가 증가한다고 해도, 임금과 일자리의 질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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