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니스 선수 펑솨이(오른쪽)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가운데)과 함께 8일 열린 스키 프리스타일 여성 빅에어 종목 결선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지난 8일 베이징 서우강 경기장에서 열린 스키 프리스타일 빅에어 경기의 승자는 아일린 구(19)였다. 이국적 외모에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구의 당당한 행보에 중국인들은 환호를 쏟아냈다.
하지만 세계 언론이 주목한 이는 따로 있었다. 관중석 한쪽에서 나란히 앉아 경기를 관람하던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지난해 말 중국공산당 전직 고위 간부의 성폭행 의혹을 폭로한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36)였다. 둘은 지난해 11월 처음 화상통화를 했고, 올림픽 개막 다음날인 5일엔 저녁을 함께했다.
이 같은 바흐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선 불편하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둘의 경기 관람 소식을 전하며 중국 정부는 “펑솨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적극 어필해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고, <뉴욕 타임스>는 “둘의 만남 소식이 펑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자들을 만족시키긴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흐 위원장의 잇따른 펑솨이 접촉이 부적절한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펑솨이는 지난해 11월 초 장가오리(76)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본인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이후 3주 동안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 뒤 나타나 ‘본인은 안전하며 폭로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이후 펑솨이의 용기 있는 ‘미투’가 중국 정부의 집요한 압력으로 무위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체육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인 바흐 위원장이 펑솨이를 잇따라 만나면, 결과적으로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싣는 꼴이 된다. 공교롭게도 장 부총리는 2018년 퇴임 전 4년 동안 겨울올림픽 영도소조 조장 등으로 이번 올림픽 준비를 담당했다.
그렇다고 바흐 위원장이 펑솨이를 둘러싼 의혹에 ‘진실 확인’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7일 성명을 내어 “(5일) 만찬 때 올림픽에서 선수로서 공통된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고, 펑솨이는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는 정도만 밝혔다.
국제인권단체는 지난해 11월 이후 바흐 위원장의 행보를 거듭 비판해왔다. 바흐 위원장이 중국 정부 쪽에 기운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11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성폭행 혐의를 간과하려는 중국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림픽 개막 이후 일정은 중국 정부가 중간에서 조정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어서 더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둘 사이 일정은 중국올림픽위원회(COC)가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펑솨이가 소속된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는 여전히 중국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이들은 8일 누리집을 통해 성명을 내어 “펑솨이 안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있으며 이에 직접 만남을 요청했다”고 밝혔다.베이징/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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