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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국은 규칙을 잘 지키고 있을까

등록 2022-01-06 08:59수정 2022-02-10 18:34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이용인의 글로벌 안테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021년 11월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대학에서 미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해 을 설명하고 있다. REUTERS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021년 11월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대학에서 미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대해 을 설명하고 있다. REUTERS

‘자유롭고 개방된’ 질서와 ‘규칙에 기반한’ 질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내세우는 목표이자 가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과 우호세력을 규합할 목적으로 미 당국자들은 공개·비공개 석상에서 빠짐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이를 슬로건으로 사용한다.

‘규칙 기반 질서’라는 수사에는 ‘중국은 국제 규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암묵적인 비난이 깔려 있다. 반대로 미국은 국제 규칙을 잘 지킨다는 사실을 은연중 부각한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2021년 11월14일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인도네시아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그는 중국에 공세적 행동을 멈추라고 촉구한 뒤 미국은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동맹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셀프 면제’

일반적으로 ‘규칙 기반 질서’는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나 비국가 행위자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규제하는 규칙, 규범, 제도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는 대부분 미국 주도로 형성됐기 때문에 미국은 규칙과 규범을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해 만든 규칙들에서 예외적으로 ‘셀프 면제’를 해왔다. 미국의 무소불위 패권 탓에 ‘내로남불’에 대한 반발이 작았을 뿐이다.

상황이 바뀌어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약화되면서 미국도 규칙 준수를 통해 명분과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위한 퀸시연구소’의 앤드루 J. 바세비치 회장과 중동 프로그램 연구원인 아넬 셰라인은 2021년 10월15일 <포린어페어스> 기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모범을 통해 (국제사회를) 선도하고 싶다면 그동안 일상적으로 자신에게 적용은 면제했던 기존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학자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핵심적인 국제 조약과 합의를 인준하도록 상원을 압박해야 한다며, 유엔해양법협약(UNCLOS),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대인지뢰금지협약 등을 꼽았다.

UNCLOS는 1982년 199개국이 가입하고 67개국의 비준을 거쳐 1994년부터 발효됐다. 12해리의 영해,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국제해협과 군도수역에서의 특수한 통항 제도, 영유권 문제와 국제분쟁 해결 제도 등을 담고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적 행동을 비난하는 핵심적인 규칙이자 규범이다.

실제로 중국이 한나라 시대의 문헌과 600년 전 명나라 장수 정화의 남해원정 기록 등을 근거로 남중국해 90% 이상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UNCLOS에 가입하지 않고 버텼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항행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에서, UNCLOS에 명시된 통항 허가 제도 등이 미국의 상선이나 군함의 운항, 잠수함 등의 정찰 활동에 방해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국은 가입하지 않은 UNCLOS를 근거로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남중국해 분쟁이 불거지던 2012년 5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장이 해양법 수위를 넘고 있는데 미국은 (필리핀 등) 우방국을 지지하는 데 입지가 약하다”며 상원에 UNCLOS 비준을 호소하기도 했다. 더글러스 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부회장도 2013년 4월1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UNCLOS 가입 당사국이었으면 국제중재재판소에 이 문제로 중국을 제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또 다른 대표적인 국제조약으로 CTBT를 꼽을 수 있다. CTBT는 1996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한 핵실험 전면 금지 조약으로 어떠한 형태·규모로도, 어떠한 장소에서도 핵폭발 실험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이 공식 발효하려면 기존 5대 핵보유국 및 원자로 보유국을 포함한 44개국 모두가 비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북한 등 8개국은 비준하지 않았다.

미국은 CTBT 협상을 주도하면서 1996년 9월 이 조약에 처음으로 서명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행정부 및 민주당 지도부가 상원 다수당이던 공화당과 3년에 걸쳐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지만 비준을 끌어내지 못했다. 1999년 10월 상원은 CTBT 비준안을 부결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상원에 재고를 요청해 CTBT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더는 밀고 나가지는 않았다.

미국은 1992년 이후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CTBT 비준이 이뤄지지 않자 다른 국가의 핵실험 금지를 억제할 명분이 약해졌다. 더욱이 <워싱턴포스트>가 2020년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핵실험 재개 논의를 보도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핵전력 현대화 사업을 강조하면서 적잖은 우려가 나온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핵실험 재개를 선언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CTBT 비준을 힘 있게 추진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UNCLOS와 CTBT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이라고도 불리는 대인지뢰금지협약에도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 북한도 가입하지 않았다. 오타와 협약은 대인지뢰 사용의 전면 금지와 폐기, 지뢰 희생자 보호 등을 뼈대로 1997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의 서명으로 채택됐다. 대인지뢰는 전술적 효과가 별로 없음에도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할 위험성이 높아 반인도주의적 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9월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겠다며 이전 행정부보다 비교적 진전된 입장을 내놨지만,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른바 ‘한반도 예외 정책’을 빌미로 오타와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해양 분쟁, 핵실험 등은 언제든 국제적 수준의 갈등으로 비화할 휘발성이 있다. 지난 세기 수많은 전쟁에 대한 인류의 반성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셀프 면제’라는 특혜를 자발적으로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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