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의 아들인 라우레아노 오르테가 무리요(왼쪽) 대통령 보좌관이 10일 중국 톈진에서 마자오쉬(오른쪽)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외교관계 재개에 관한 코뮈니케에 공동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톈진/신화 연합뉴스
중앙아메리카(중미)가 ‘미국·중국 간 경쟁’의 새 격전지로 떠올랐다. 지난달 대선을 치른 니카라과가 지난 9일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겠다고 선언했고, 지난달 말 대선을 치른 온두라스의 당선자는 애초 내비쳤던 중국과의 수교 뜻을 접고, 대만과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의 대리인 격인 대만을 놓고 카리브 해의 두 나라, 니카라과와 온두라스는 왜 다른 선택을 했을까?
니카라과 “중국과 수교”…온두라스 “대만과 유지”
12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인구 670만 니카라과의 데니스 몬카다 외교장관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만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모든 당국 간 접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떼어낼 수 없는 일부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 단교 결정은 대만에 대한 니카라과의 두 번째 단교이기도 하다. 다니엘 오르테가(76) 현 대통령은 1985년 처음 집권하면서 대만과 단교했지만 1990년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수교가 이뤄졌다. 오르테가 대통령이 2007년 재집권하면서 곧 대만과 단교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가 집권한 14년 동안 외교관계가 유지됐다. 혁명가 출신인 오르테가 대통령은 반미 성향으로 줄곧 미국과 갈등을 겪어 왔다.
중앙아메리카 한 가운데 있는 인구 1천만의 온두라스는 니카라과와 다른 결정을 했다. 지난달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시오마라 카스트로(62) 당선자 쪽은 지난 10일 “새 정부는 대만과 외교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니카라과가 대만과 단교를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정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앞서 카스트로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겠다고 밝혔으나, 당선된 뒤에는 이를 철회했다. 카스트로 당선자는 2006년 집권해 2009년 쿠데타로 실각한 마누엘 젤라야(69)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친중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의 상반된 결정의 배경에는 이들 나라가 미국과 맺어온 오랜 관계와 2010년대 들어 강화된 중국의 공격적인 외교 정책이 깔려 있다.
니카라과가 대만과 단교한 가장 큰 원인은 오르테가 정부와 미국 간 오랜 갈등 때문이다. 좌파 성향의 오르테가 대통령은 1979년 미국의 지지를 받던 독재 정권을 뒤엎은 뒤 1985년 정권을 잡았고,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당시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아, 니카라과 좌파 정부 타도를 외친 우파 반군 ‘콘트라 연합’을 지원하는 등 니카라과 좌파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 정책을 폈다. 1990년 탈냉전 이후 미국과 니카라과 간 관계 개선이 일부 이뤄졌지만, 2007년 오르테가 대통령이 재집권 하면서 갈등이 더 격렬해졌다.
지난달 7일 치러진 대선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이 5번째 집권에 성공하자, 미국은 “부정선거”라고 비난하며, 니카라과 정부 관계자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은 또 니카라과가 대만과의 단교를 선언한 지난 9일 오르테가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네스토르 몬카다 라우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0년 이후 중남미를 상대로 진행된 중국의 공격적인 정책은 2007년 오르테가의 재집권과 맞물려 니카라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어졌다. 2013년에는 중국 기업의 주도 아래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총 길이 276㎞, 총예산 500억 달러 규모의 니카라과 대운하가 추진됐다. 완공 이후 중국 쪽이 50년 동안 운영권을 갖는 방안으로, 미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국내외 반발로 실제 추진되지 못했지만, 오르테가 정부와 중국이 얼마나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온두라스 대통령 당선자인 시오마라 카스트로(오른쪽)가 지난달 28일 테구시갈파에서 대선 이후 연설을 하고 있다. 테구시갈파/로이터 연합뉴스
온두라스 새 당선자, 기존 외교관계 유지 필요
반면, 온두라스는 외교 노선의 급격한 변화보다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 확보가 더 시급한 상황이다. 니카라과의 경우 오르테가 정부가 14년 동안 유지되면서 탄탄한 기반을 쌓아온 데 반해, 온두라스의 카스트로 당선자는 아직 집권 전이어서 당장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카스트로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중국과 수교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자, 미국은 브라이언 니콜스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를 니카라과로 보내 카스트로를 비롯해 선두 후보 2명을 만나게 했다. 이 자리에서 니콜스 차관보는 ‘대만과의 외교 관계가 유지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오랜 갈등 관계인 니카라과를 잃더라도 중미 안보의 핵심 국가인 온두라스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또 카스트로 당선자의 남편인 젤라야 전 대통령이 2009년 쿠데타로 축출됐는데, 그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스트로 당선자는 미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온두라스 경제가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보면, 온두라스는 미국에서 들어온 송금이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달하고, 수출의 3분의 1가량이 미국에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온두라스 경제인들은 미국과의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며 대만과의 수교가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왔다.
최근 중미에서 이뤄진 미-중 간 외교 대결의 성적은 1승 1패지만, 중미가 미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미국이 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가 세계 14개 국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들 나라의 향후 중국 수교 여부에 미·중은 물론 세계의 눈과 귀가 모이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