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 110여개국 정상, 시민활동가, 기업인 등을 화상으로 불러모아 주최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가 9일(현지시각) 이틀 일정으로 개막했다.
이 회의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내놓은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말 그대로 미국이 ‘전략적 경쟁자’로 파악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성격이 강하다. 행사 첫날인 9일엔 바이든 대통령이 개회사로 행사의 문을 연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이 참가하는 비공개 본회의 등이 열렸다. 이 회의에선 민주주의 강화와 권위주의로부터의 보호, 부패 척결, 인권 증진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회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미국 내에서조차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큰 비판 지점은 참가국 명단에 인도·파키스탄·폴란드·필리핀·이라크 등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논란이 있는 나라들이 포함되는 등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인도는 민주적 선거를 치르는 나라이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4자 협의체인 ‘쿼드’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이 소중히 다뤄야 할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미국이 인도 내부의 문제점엔 눈을 감고 회의에 초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파키스탄 역시 지난 8월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미국이 현지 정세를 관리하려면 도움을 청해야 하는 나라다. 폴란드도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벨라루스에서 중동 이민자들이 유입되는 문제로 인해 중요성이 커졌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6000여명이나 되는 이들을 재판 없이 학살했지만 초대받았다. 미-중 경쟁의 최전선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런 이유로 이 회의가 “민주적 원칙에 대한 헌신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더 기초해 참가국을 판단했다는 손쉬운 비판을 불렀다”며 “도착 즉시 사망’(DOA)의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민주적 규범을 지키지 않고도 미국의 강력한 파트너일 수 있다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게 무슨 의미냐”며 “백악관은 초청 명단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번 회의의 구체적인 결과물이 무엇일지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있다. <포린 폴리시>는 이번 회의의 궁극적 목적이 새로운 약속이나 프로그램 등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내는 것인지, 실체는 거의 없는 선언만 내놓는 토론일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 정상회의에서 진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민주주의 그 자체는 더 이상 그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강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에선 자기 자신의 민주주의가 크게 손상된 미국이 이런 회의를 개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여전히 ‘선거 사기’ 주장을 펴고 있고, 지지자들은 1월6일 민의의 전당인 연방 의회에 난입했다. 이와 관련해 미 정부 고위 관리는 지난 7일 사전 브리핑에서 “미국은 이번 정상회의에 겸손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적으로 민주주의를 북돋우는 일은 미국 내부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성실하고 투명하게 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명확히 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의 결함도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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