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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오마이홍콩④] 정부가 의원 출마 자격 심사…파괴된 권력 균형

등록 2021-11-18 16:11수정 2021-11-19 11:31

다음달 입법회 선거에 민주진영 출마 0명
2019년 70%대 투표 열기 온데간데 없어
11일 홍콩의 ‘뉴 M+’ 미술관에서 한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11일 홍콩의 ‘뉴 M+’ 미술관에서 한 관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고뇌를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네 번째로 민주 진영 인사는 한 명도 출마하지 못한 홍콩 입법회 선거의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로 1년 이상 연기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가 다음 달 19일 치러진다. 그동안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홍콩 정부)는 중국 정부와 함께 선거 제도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선거 방법과 선거 인원 등을 크게 바꿨다.

지난 12일 마감된 후보 등록 결과를 보면, 모든 의석에 후보가 1명 이상 출마했다. 이는 홍콩 선거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전체 후보자 수는 과거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 입법회 선거에 출마하려면 친중국 진영이 장악한 선거위원회 위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홍콩 정부의 자격 심사를 통해 ‘애국자’ 기준에 부합한다는 판정을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홍콩 민주파 진영은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비록 몇몇 후보가 민주 인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은 민주 진영의 인정을 받지 않은 이들이다. 친중 진영(건제파)은 다른 이유로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고 예고하는데, 이는 홍콩 시민들이 선거 자유를 빼앗겼기 때문에 선거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진짜 이유를 은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12일까지 2주 동안 총 154명이 입법회 선거 후보로 등록했다. 새 선거제도에 따르면, 홍콩의회 의석수는 기존 70석에서 90석으로 늘어난다. 이 중 40석은 홍콩 최고직인 ‘행정장관’을 선발하는 선거위원회 위원들이 간접 선거로 뽑고, 30석은 직능 단체에 배당된다. 직접 선거로 뽑는 지역구 직선 의석은 20석에 불과하다.

선거위원들이 뽑는 40석에는 총 51명이 출마해 경쟁률이 1.2 대 1꼴로 가장 낮다. 30석이 배정된 직능 영역에서는 총 68명의 후보가 경합하고, 지역구 직선 20석에는 35명이 도전했다. 이 가운데 민주 진영에서 인정한 후보는 한 명도 없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번 선거를 다양한 후보가 참여하는 경쟁 선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보다 훨씬 후퇴했다. 2016년 홍콩 입법회 선거는 총 70석을 지역구 직선 35석과 직능 대표 35석으로 나눴다. 지역구 직선에는 200명 이상 출마했고, 직능 대표에는 비록 단체별로 1명씩 출마해 자동 당선됐지만 단체 내에서 100명 가까이 경쟁했다.

이렇게 정치 판세가 크게 바뀐 것은 중국과 홍콩 정부가 입법회 선거 제도를 바꿔 반대 목소리가 의회에 들어오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반대 세력을 홍콩 정치에서 배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애초 홍콩 주권이 반환되기 전, 중국은 영국과 협의해 홍콩의 행정장관 선거와 입법회 선거를 최종적으로 보통 선거로 하기로 약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선거는 친중 인사와 재계 등에 크게 기울게 설계됐고, 중국이 홍콩 주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도록 했다.

13일 홍콩 시민들이 다음달 입법회 선거 출마자의 홍보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13일 홍콩 시민들이 다음달 입법회 선거 출마자의 홍보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민주 투쟁이 지속하고,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반송법) 반대 운동이 전 국민적으로 일면서 중국 공산당과 홍콩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크게 증가했다. 정치 상황도 반전됐다. 2019년 말 홍콩의 유일한 직선제 선거인 구의회 선거에서 총 450여석 가운데 380여석을 민주 진영과 야당 진영에서 차지했다.

성공을 경험한 민주 진영은 2020년 입법회 선거에서 중국 공산당 정권과의 교섭력을 높일 수 있는 과반, 즉 35석 이상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홍콩 정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코로나19를 이유로 입법회 선거를 무기한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중국 공산당은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 특별행정구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 결정’을 통해 홍콩 기본법에서 홍콩 행정장관 및 입법회 선거를 규정하는 부속문서 1·2호를 크게 수정했다.

개정된 내용에는 홍콩 입법회 의원 수를 70명에서 90명으로 늘리고,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위원은 12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렸다. 인민대표대회와 정협 홍콩 대표 외에 중국 전국조직의 홍콩 회원들이 포함됐다. 후보 등록을 위해 친중 진영 인사들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등 적지 않은 내용이 민주 진영 후보의 출마에 불리하게 설계됐다.

홍콩 정부도 선거법을 개정해 자격심사위원회의 위원 수를 확대하고, 2급 심사제도를 만들어 추천을 받았더라도 홍콩 정부 관료들로 구성된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애국자’에 해당하는지 판정을 받도록 했다. 이에 대해 입법부의 감독을 받는 홍콩 정부가 입법부 선거 출마자를 심사하는 것이 맞는지 역할 충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대목은 선거에서 기권하거나 투표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이런 행위를 권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선거를 방해하는 행위로서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해외의 일부 민주파 정치인들이 홍콩 국민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호소하자, 덩빙창 홍콩 보안국장은 이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법 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글을 퍼 나르는 이들 몇몇이 실제 체포되기도 했다.

지난해 홍콩 입법회 민주 진영 의원들은 홍콩 정부의 선거 취소에 불만을 품고 집단 사임했다. 올 초부터 민주 진영 인사들의 선거 참여에 관심이 모였고,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일찍부터 민주 진영 인사들이 새 선거 제도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이들은 애국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주 진영 의원들은 최근 몇 달 새 홍콩 정부에 의해 자격을 박탈당했다. 또 적지 않은 전 입법회 의원과 민주 활동가들이 다양한 사건으로 구금돼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많은 인사가 정당이나 단체 등에서 탈퇴해야 했다. 결국 민주 진영은 내부 논의 끝에 이번 입법회 선거에 후보를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민주 진영을 자처하는 후보가 일부 있지만 이들은 이전 선거에서 매우 미미한 표를 얻었거나 홍콩의 민주 지지자들이 선호하는 후보가 아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구의회 선거의 70%대 투표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다. 친중 진영의 리더인 류자오자 전국 홍콩·마카오 연구회 부회장은 “(홍콩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이 출마에 실패하면서 새 선거 제도가 기존 민주파 지지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치열한 정치적 이슈도 없어 투표율이 30% 안팎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투표율과 상관없이 앞으로 홍콩 입법회는 친중·친정부 인사들이 대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의회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홍콩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분명한 예시이다.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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