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파묻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철군·대피가 이뤄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주변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응징을 예고했다. 미국이 20년 지속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겠다며 오는 31일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철군 및 민간인 대피 작업이 혼돈에 빠져들면서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공항 테러 소식이 알려진 뒤 7시간여 만인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이슬람국가의 아프간 지부 호라산을 향해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호라산 지도부와 자산, 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마련할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무력과 정밀성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여기서 250m 정도 떨어진 배런호텔에서 두 차례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지역 당국자의 말을 따, 아프간 민간인 7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호라산은 자신들이 공격 주체라고 밝혔다. 호라산은 미국 등 서방을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한 탈레반마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 추가 테러 공격 우려가 크다.
미국은 자국인과 아프간인 대피 작업을 계속 진행해 31일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바이든은 “우리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저지당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임무를 관두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병력 추가 투입을 승인하겠다고 덧붙였다.
호라산의 테러 공격으로, 바이든은 추가 인명 피해를 막으면서 임박한 시한 안에 대피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아울러 이날 약속한 대로 호라산 지도부와 그 시설을 신속하게 찾아내 정밀타격하는 과제도 안았다. 미국을 또 다른 ‘중동 수렁’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테러에 명료하게 보복하는 일이다.
바이든은 이번에 숨진 미군들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위험하고 이타적인 임무에 복무한 영웅들”이라고 일컬으며 애도를 표하고 묵념을 제안했다. “힘든 하루”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 바이든은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모은 두 손 위에 고개를 파묻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침통하고 단호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이든은 “20년 전쟁을 끝낼 때였다”며 거듭 철군 결정을 옹호했으나, 이날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번 테러로 대통령의 사임을 주장한다’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젠 사키 대변인은 “정치 얘기 할 날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추가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아프간에 파병했던 주요 동맹들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긴급 안보회의를 열고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캐나다와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른 아프간 파병국들은 테러 첩보 때문에 카불 공항 대피 작전을 종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프랑스도 27일 대피 작전을 중단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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