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전격 철수한 직후인 2021년 7월5일 아프간 군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 REUTERS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밝힌 시한은 9·11 테러 20주년을 맞는 2021년 9월11일까지다. 불과 한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미군은 이미 7월 초 아프간 침공의 핵심 기지이던 바그람 기지에서 철수했고, 아프간 정부군을 훈련하거나 자문하던 병력도 남아 있지 않다. 실질적으로 주둔하는 미군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군의 아프간 철군에 따라 주변국들은 외교안보 정책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재평가해 수정할 수밖에 없다. 아프간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이 바뀌고, 이는 몇몇 국가에 힘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는 허약하고 불안정하며, 탈레반은 아프간의 3분의 1을 장악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가가 인도다. 핵을 보유한 강대국이자 역사적으로 적대적 혹은 라이벌 관계인 중국·파키스탄 두 나라와 육상 국경을 맞댄 인도는 불안정해지는 아프간 정세에 따라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인도 내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던 쿼드(Quad·미국, 인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4개국의 비공식 안보회의체) 참여 수위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안보정책의 전략과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쿼드의 활력은 인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쿼드가 왕성해지면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도 ‘쿼드 플러스’에 참여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에 따른 파장을 다각도로 따져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철군 이후 아프간의 시나리오를 거칠게 두 가지로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현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의 공세로 무너지는 경우다. 아프간 정부가 유지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보 당국의 분석 결과, 미군 철수 이후 현 아프간 정부는 6개월~2년 사이에 붕괴하리라는 얘기도 있다.
아프간 정부 붕괴는 인도에 최악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는 지난 20년간 아프간 정부를 경제적·외교적으로 지원하며 적대국인 파키스탄을 샌드위치 방식으로 압박했다. 파키스탄이 지리적으로 인도와 아프간 사이에 있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프간을 접수하면, 지역적·인적 네트워크로 탈레반과 얽힌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아프간까지 확대된다. 큰 돌덩어리 두 개가 인도를 위에서 누르는 모양새가 된다.
인도는 그동안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방패로, 좁게는 중국 해군력과 정보력에 대한 인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쿼드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정세가 불안해지면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전면전과 국지전을 빈번하게 벌였던 파키스탄에 대항하는 쪽으로 국방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시아담당 선임 부소장 등도 <포린폴리시> 6월24일 기고문에서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으로 넘어가면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인도는 취약한 쪽(파키스탄)으로 관심과 자원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이는 인도의 위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쿼드의 한쪽 다리를 옭아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아프간 철군 이후 과거 소련의 아프간 점령에 대처했던 방식처럼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간에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수도 있다. 가능성을 떠나 이런 예상이 현실화하면 미국과 인도의 전략적 불신은 깊어지고 쿼드는 유명무실해진다.
둘째로 현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전복되지 않고 상당 기간 유지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아프간이 국제정치적으로 힘의 공백 상태가 되는 것이고, 중국이 미국의 빈 공간을 채울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아프간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테러리스트’로 부르는 자치구 반정부 세력이 아프간에 거점을 두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인도는 중국,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아프간, 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을 상대해야 한다. 이미 중국은 파키스탄 남부 과다르 항구에서 아프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까지 철도를 연결한다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인도가 육상안보에 집중하면 해양안보에 초점을 맞춘 쿼드의 결속력도 일정 부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인도에서도 미군의 아프간 철군이 쿼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도 외교정책 분석가인 세샤드리 차리는 6월2일 <더프린트> 기고를 통해 “쿼드가 역내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지금 시기에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쿼드에 주먹을 날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도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인도의 ‘쿼드 딜레마’는 참여국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인도를 제외한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쿼드 3개국의 최우선 순위는 남중국해, 동중국해,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홍콩의 인권, 대만 문제 등이다. 3개국은 이런 이슈에 인도가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관여하기를 원한다.
이에 비해 인도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해군력 강화와 팽창을 우려하지만, 육상 국경 지역에서 중국의 행동이 공세적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도 상당히 크다. 또한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정치적·군사적·외교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에 잔뜩 신경 쓰고 있다. 인도의 육상 중심의 전통적 외교안보 사안은 다른 쿼드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공조하기가 어렵다. 인도가 쿼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2020년 6월 중국과의 국경분쟁 지역인 라다크에서 충돌이 벌어진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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