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전염병 대유행이 지나면 사회적 불안과 갈등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1830년대 프랑스에서 창궐한 콜레라가 사회혁명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UPI코리아 제공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늘면서 꽁꽁 동여맸던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살얼음판 걷듯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 일상을 영위해온 만큼 기대감이 적지 않다.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공급망이 복원돼 경제성장이 폭발적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일상 회복이 질서정연하게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향후 2~3년 동안은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대의에 억눌렸던 사회갈등이 더욱 부풀어오르고 분노와 우울을 가까스로 방어하던 심리적 저지선마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혼란에 방아쇠를 당기는 촉매제는 ‘불평등’이라고 여러 외신이 역사적 팬데믹을 반추한 보고서들을 인용해 보도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 5월1일치에서 ‘팬데믹 이후’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면서 빈부 격차가 가져올 파괴적 영향력을 경고한다. 1830년대 프랑스를 휩쓸고 지나간 콜레라로 한 달 사이에 파리 시민의 3%가 숨졌다. 콜레라 대유행으로 파리의 가난한 시민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전염병을 피해 고국을 등진 부자들에게 분노했다. 잡지는 “이후 몇 년 동안 프랑스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이어졌다”며 “전염병의 종식은 프랑스의 경제 부흥을 촉진하고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지만, <레미제라블>에서 보듯이 또 다른 종류의 사회혁명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유럽인, 코로나 이후 불평등 더 반대
코로나19도 다른 역사적 팬데믹처럼 빈부 격차를 확대하고, 이는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을 더 예민하게 벼리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런던정경대학 소속 교수 3명이 최근 논문에서 유럽인들이 코로나19로 불평등에 더 반대하게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압력이 정치적 혼란으로 분출된 사례도 있다고 잡지는 보도했다. 2013~2016년 발병한 에볼라는 서아프리카의 민간 폭력을 40%나 증가시켰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연구에서 2001년 이후 133개국에서 발생한 사스, 지카바이러스, 에볼라를 비롯한 5개 전염병의 결과를 분석했는데 사회 혼란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팬데믹과 사회 혼란의 역사적인 사례를 분석한 뒤 ‘포스트 코로나19’를 예측한 2020년 7월의 논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탈리아 페라라대학의 경제·경영학과 부교수인 로베르토 첸솔로와 보코니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마시모 모렐리는 1300년대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서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이르기까지 57개의 전염병 대유행 이후에 벌어진 시위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전염병 발병과 관련되지 않은 시위나 혼란은 4개 사례뿐이었다. 상당수 혼란은 심각한 봉기 수준으로 이어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염병 대유행 시기는 (뒤에 이어질) 사회 혼란의 인큐베이터”였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이를 토대로 코로나19가 끝나면 세계적으로 사회 불안정 수준이 치솟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 교수는 코로나19가 사회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토양’을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사회·경제적 관계망의 훼손이다. 코로나19로 ‘홍콩 자유화’ 시위,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그레타 툰베리의 영감을 받은 행동주의 환경보호론자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여기에 더해 각 정부는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해 제한 조처를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중에 잠재적인 불만을 야기한다.
둘째는 집단심리 측면이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는 개인을 사적 영역의 틀에 가두는 경향이 있어 펜데믹 시기에는 시위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관계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사회 분위기를 더욱 공격적이게 함에 따라 코로나19 이후 사회 갈등 수준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팬데믹은 사회 혼란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사적 경험을 분석한 결과 팬데믹이 시민사회에 미치는 혼란은 세 가지 양상으로 전개된다고 두 교수는 밝혔다. 첫째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적 조처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시민사회와 제도적 기구들 간의 위험한 마찰을 불러온다. 둘째는 전염병이 사망과 경제적 복지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름으로써 불평등을 악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염병 확산과 관련한 비합리적 이야기를 믿게 하는 심리적 쇼크가 강해져 사회적·인종적 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야기할 수 있다. 다양한 요소가 사회 불안 현상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고 악화할 수도 있다. 팬데믹 이전의 정치적 안정성과 사회적 응집력의 정도, 대유행의 지속 기간, 사망률과 확산 정도 등에 따라 국가나 사회마다 ‘팬데믹 후유증’이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 대유행으로 입은 피해, 즉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느냐가 중요하다. 두 교수는 선행 연구를 인용해 팬데믹으로 분배 가능한 잉여가 줄어들면서 정치적·인종적으로 분열됐던 국가들은 ‘심각한’ 결과에 부닥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권력집단은 줄어든 잉여를 되레 불평등을 악화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내적 갈등을 증가시킨다.
포스트 팬데믹을 예측하는 이런 연구들은 2022년 선거를 앞둔 국가에는 특히 중요하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변화 욕구가 더 강해지고 갈등 강도도 강해지면서 민심의 휘발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도 6월1일 펴낸 보고서에서 “팬데믹이 진정되고 경제가 회복하면서 사회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며 범죄 이슈가 2022년 11월 미 중간선거의 지형을 바꿀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도 2022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19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계층 간 자산 격차는 더욱 커졌고 여성과 청년, 고령층 등 취약계층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대선 주자들은 상황을 더욱 엄중하게 봐야 한다. 성냥불이 산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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