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대영제국의 화폐로서 한때 기축통화 구실을 했던 파운드화의 위상이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파운드화 가치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 1.4877달러에서 27일 1.3225달러까지 떨어졌다. 2거래일 만에 11.1%나 절하됐다. 3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지금은 달러, 유로, 엔 등에 이어 세계 5위권 수준의 통화로 쪼그라들었지만, 파운드화는 한때 영국 제국주의의 힘을 빌려 세계를 주름잡는 기축통화였다. 금융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1860~1914년 파운드화는 세계교역 결제통화의 60%가량을 차지했고, 1913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에 달했다. 당시에는 각 나라가 외환보유액을 달러가 아닌 파운드화로 보관했다. 금본위제의 시초도 1777년 영국 화폐주조국장을 맡고 있던 과학자 뉴턴이 금 1온스당 4.25파운드로 고정시킴으로써 시작됐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자 자연스레 달러화의 영향력이 커졌다. 2차대전 중인 1944년에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파운드화 기축통화 시대를 종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됐고,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는 달러를 기준으로 일정하게 유지(고정환율제)됐다. 그 뒤 1970년대까지 독일·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파운드화는 달러에 이은 ‘제2의 통화’ 자리도 잃고 독일 마르크, 일본 엔에도 밀린 세계 5위권 통화 정도에 머물렀다.
파운드화의 위상은 1980년대에 마거릿 대처 수상 지휘 아래 영국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면서 재부상했지만, 1990년 유로화 체제 출범을 위해 유럽 각국의 환율 변동을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럽공동환율시스템(ERM)에 가입했다가 다시 고꾸라졌다. 1992년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헤지펀드는 파운드화 가치가 마르크화에 비해 고평가됐다며 100억달러를 동원해 파운드화 투매(‘검은 수요일’)를 시작했고 영국은 이를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영국은 그해 마르크화 가치와 연동돼 환율이 움직이는 공동환율시스템에서 탈퇴했다. 이 과정에서 파운드화 가치는 15%가량 하락했다. ‘검은 수요일’ 공격을 이끈 소로스는 지난 20일 영국 언론 <가디언>을 통해 브렉시트가 ‘검은 수요일’ 이상으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이끌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파운드화는 28일 뉴욕시장에서 장중 1.3308달러 수준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투자은행업계 등 경제전문가들은 ‘검은 수요일’ 등 이전 사례에 비춰 파운드화가 1.3달러까지 하락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파운드화가 체면을 구기긴 했으나 그렇다고 얻는 게 없는 건 아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파운드화 가치 절하는 수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영국 경제에 다소 유리한 측면도 있다. 물론 자국 통화 가치가 절하된 만큼 대외부채에 대한 부담은 늘어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파운드화 가치 변동이 브렉시트에 대한 공포감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해석한다. 여기엔 영국 경제의 둔화 우려를 넘어 유로존 붕괴 위험, 국제금융기지로서의 영국의 지위 상실 등과 같은 파급효과까지가 반영된 결과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브렉시트 불안감이 확산될수록 파운드화 가치의 추가 하락 압력은 거세질 것”이라고 봤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