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이해관계 얽혀 그리스해법 쉽지 않아
“그리스 못 구하면 이탈리아 구제금융 대열”
“그리스 못 구하면 이탈리아 구제금융 대열”
유럽 재정 위기의 국면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류로 다시 중대 기로에 놓였다. 그리스에 대한 “부분적 디폴트(채무불이행)” 도 공론화돼 상황은 더욱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유로존 17개국 재무장관들은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8시간의 회담 끝에 “(재정 위기) 감염 위험에 대응하는 유로존의 체계적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추가적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회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도 감염 징후가 나타나는 가운데 열렸다. 유로존에서 경제 규모가 3·4위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1·12일 6% 안팎으로 유로존 출범 이래 최고치에 이르며 우려를 반영했다. 양국 증시는 12일 개장 초에 3~4% 폭락하기도 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하지만 사태의 진원지인 그리스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신 4400억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을 그리스 문제에 동원할 수 있다는 정도의 공감대만 형성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지지부진한 논의에 실망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장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주저하거나 실수를 범할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로존은 물밑에서는 좀더 다양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이해관계가 얽혀 결론 도출이 쉽지 않다. 만기가 돌아오는 그리스 국채를 신규 국채로 바꿔주자는 기존 아이디어 외에 국채 금리 할인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리스의 채무 규모를 직접 감축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제3자가 시장에서 그리스 국채를 사들이는 식이 아니라, 그리스 정부가 채권을 싼 가격에 직접 환매해 부채를 줄이도록 지원하자는 안이다. 이런 식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60%인 3500억유로에 이른 부채를 수백억유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리스의 “부분적 디폴트”를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에 반대한다고 했으나, 얀 케이스 더야허르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12일 “분명히 (부분적 디폴트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신구 국채 교환을 ‘부분적 디폴트’로 간주하겠다는 신용평가사들의 경고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나아가 그리스 국채의 일부가 실제로 디폴트되도록 놔둘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동안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고통 분담을 외면하는 대형은행 등 민간투자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며 그리스 등의 신용등급 추가 강등을 경고해왔다.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은행들은 유로존 국가와 기구가 당장 그리스 국채 매입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은행들은 국제금융협회 명의로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로존 국가들과 국제통화기금은 시장이 통제권을 벗어나고 위기의 감염에 속도가 붙는 것을 막으려면 수일 안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2차 구제금융 규모 1150억유로 중 300억유로를 국채 교환 방식으로 담당하라는 요구를 받는 유럽 민간은행들은 그리스 정부의 상환 능력과 의지가 더 담보돼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그리스를 구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이탈리아가 구제금융 대열에 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탈리아는 부채(1조5980억유로)가 유로존 재정안정기금(4400억유로)의 세배나 돼 사태 대처가 더 쉽지 않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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