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있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지점의 모습. 샌타모니카/AFP 연합뉴스
지난 3월 시작된 미국발 은행 위기의 주요 진원지 가운데 하나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결국 파산해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에 인수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이자, 위기 발생 이후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등에 이은 네번째 은행 파산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일(현지시각) 새벽 보도자료를 내어 캘리포니아 금융보호혁신부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파산관재인으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예금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에 대한 경쟁입찰을 실시해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이 퍼스트리퍼블릭의 모든 예금과 실질적 자산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일부터 미국 내 8개 주에 자리한 퍼스트리퍼블릭의 84개 지점은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지점으로 영업이 재개된다.
퍼스트리퍼블릭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미국 내 14위였고, 4월13일 현재 자산 2291억달러(약 307조2200억원), 예금 1039억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점을 두면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에서 주로 부유층을 상대로 한 영업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말 현재 이 은행의 미국의 예금보장 한도인 25만달러 이상 대형 계좌의 비율은 전체의 7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미국발 은행 위기는 지난 3월10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정보기술(IT) 업체들을 상대로 영업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뒤 본격화됐다. 은행의 실적이 악화될 것이란 소문이 에스엔에스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자 파산 전날인 9일 하루 만에 무려 전체 예금의 4분의 1인 420억달러가 인출됐다.
이번 은행 위기의 원인은 지난해 2월 말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에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거푸 올리는 과정에서 장기화된 저금리 기조 속에서 장기 채권에 돈을 묶어뒀던 은행들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이 상황에서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자 은행들이 돈을 내주려 채권을 대규모로 매각하며 손실이 확정됐다. 이를 본 예금자들이 패닉에 빠지며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발생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저금리 아래서 상환 기간이 긴 주택론이나 채권 투자를 늘려왔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여파로 위기에 몰렸던 퍼스트리퍼블릭은 지난 3월 제이피모건 등 대형 은행 11개사로부터 300억달러의 예금을 긴급수혈 받았다. 하지만 4월24일 1분기 결산 결과 지난해 말에 견줘 예금 잔고가 40%나 줄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지난 28일에만 주가가 43% 떨어지는 등 지난해 말에 견줘 주가가 97% 이상 폭락했다.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을 내어 “정부가 우리에게 (퍼스트리퍼블릭의 구제와 관련한) 협력을 요청해 이를 실행했다”며 “우리의 재무적 강고함과 능력으로 인해 예금보험기금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거래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주택론과 상업 대출 등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연방예금보험공사와 제이피모건체이스가 나눠 감당하게 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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