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4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참석한 하원 ‘총리 질의응답’에서 ‘노딜 브렉시트’ 찬반을 두고 의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영국 하원이 이날 ‘노딜 브렉시트’를 불허하는 유럽연합법안을 찬성 327표, 반대 299표 등 28표 차로 통과시키면서 브렉시트 자체도 점점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은 과연 유럽연합을 탈퇴할 수 있을까? 보리스 존슨 총리가 불사하겠다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는 법안을 영국 하원이 통과시킴으로써, 브렉시트 자체가 점점 미궁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하원은 4일 영국이 유럽연합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지 않고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을 수 있는 유럽연합법안을 찬성 327표, 반대 299표 등 28표 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이 상원에서도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존슨 총리는 유럽연합과의 새로운 합의가 없더라도 오는 10월31일이 기한인 유럽연합 탈퇴를 감행하겠다는 노딜 브렉시트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법안의 하원 통과에 반발한 존슨 총리는 이날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치르자는 동의안을 상정하며 반격에 나섰으나, 이 역시 찬성 298표, 반대 56표로 부결됐다. 조기총선을 치르려면 하원 전체 의석인 650석의 3분의 2인 434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여기에 한참 모자랐다.
노딜 브렉시트를 불허하는 유럽연합법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 정상회의 다음날인 10월19일까지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재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노딜 브렉시트’에 대해 의회 승인을 얻도록 규정했다. 현재 분위기라면 의회가 이를 승인할 리가 없다. 정부가 의회한테 노딜 브렉시트를 승인받지 못하면, 총리는 유럽연합에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인 2020년 1월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장 요청을 하도록 했다. 유럽연합이 이를 받아들이면 총리는 즉각 수용해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이 다른 제안을 내놓아도 수용해야 한다.
상원은 이날 밤샘 회의를 통해 이 법을 6일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들이 이미 내놓은 100개의 수정안으로 시간 끌기를 하며 통과를 저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배제됐다. 존슨 총리가 더욱 궁지로 몰린 셈이다.
유럽연합법의 하원 통과를 계기로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브렉시트 자체가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가 아니라 ‘노 브렉시트’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첫째, 존슨 총리가 취임 한달 만에 3~4일 이틀 동안 이 법의 통과 등 연이은 세차례의 표결에서 패배함으로써 브렉시트뿐 아니라 국정운영 능력의 상실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이날 유럽연합법 표결에서 보수당에서는 반란표가 21표나 나왔다. 존슨은 이들의 당적을 박탈하겠다고 나섰으나, 그중에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외손자인 니컬러스 솜스, 하원 최장수 현역인 켄 클라크 의원,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 등 유수의 정통 보수당원 등이 포함돼 있다. 존슨이 이들 의원의 출당을 고집할 경우, 집권 보수당은 대대적인 분열로 이어질 위기로 몰린다. 보수당의 이런 분열과 지리멸렬은 브렉시트의 동력을 확 떨어뜨릴 게 분명하다.
둘째, 조기총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져 선거 결과에 따라 브렉시트의 여정은 더욱 꼬일 것으로 보인다. 이날 존슨 총리가 상정한 조기총선안은 부결됐으나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등 야당 등은 ‘노딜 브렉시트 불허법’이 발효되면 조기총선을 치르는 데 동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브렉시트를 놓고 조기총선을 치르자는 것은 노동당의 일관된 요구이기도 하다.
노동당의 의도대로 조기총선이 치러져 보수당이 패배하면 브렉시트는 다시 원점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커진다. 브렉시트만 연기된 채 조기총선이 불발돼도 브렉시트 논의는 다시 쳇바퀴를 돌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한다는 존슨의 강경파와 이를 반대하는 쪽 사이의 교착상태만 길어지는 것이다.
2016년 국민투표로 가결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마감 시한을 두차례나 연장하고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사상 초유의 영국 정치권과 국민의 분열만을 악화시키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