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등 대서양 양쪽 지도자들이 5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75돌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포츠머스는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이 출항한 곳이다. 포츠머스/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브렉시트 분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으로 더욱 악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의 강경 브렉시트파를 노골적으로 편드는 한편 ‘유럽연합(EU)과 미국 중 선택하라’는 식의 압박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영국이 시한까지 유럽연합 탈퇴 협정을 못 맺더라도 유럽연합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테리사 메이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자신이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예측한 것을 자랑하며 “브렉시트는 실행될 것이고 실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영국과 미국의 “경탄스러운” 무역 협정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브렉시트를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뿐 아니라 영국 정치에 입김을 행사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브렉시트 논란에서 지도력이 먹히지 않자 7일 자진 사임하는 메이 총리의 후임과 관련해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보수당 내 총리 후보 경선을 앞둔 강경 브렉시트파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과 20분간 통화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직접 만나려 했지만, 선두주자인 존슨 전 장관은 역풍을 우려한듯 만남은 거절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보리스를 오랫동안 좋아해왔다”며 “그가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슨 전 장관의 경쟁자인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에 대해서는 “마이클을 모른다”고 했다. 또 자신과 원격 설전을 벌여온 런던의 무슬림 시장 사디크 칸과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에 대해서는 기자회견과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부정적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코빈 대표가 자신을 만나기를 원했으나 거절했다고도 주장했다. 코빈 대표는 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개최한 국빈만찬 초청을 거절하고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는 거리시위에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브렉시트 논란 및 영국 정치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유럽에서 자신과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브렉시트가 강행되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영국이나 유럽에서 득세하는 셈이 된다. 브렉시트 지지층에는 극우 또는 우파가 넓게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싫어하는 유럽연합이 약화될 뿐 아니라 영국도 미국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외국 정상의 전례 없는 내정 간섭에 영국에서는 참담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디언> 칼럼은 “트럼프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가 이끄는 미국과 긴밀해진다는 것은 주권을 회복하는 것과는 멀다는 것이 명확하다”며 “트럼프와 연대한다면 우리는 국민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한 관할구가 될 것이며, 우리는 한 강국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코빈 노동당 대표는 항의 집회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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