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법안 토론을 하던 중 갑자기 천정에서 누수된 물이 쏟아지자 의원들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고 있다. 닐 브라이언 의원 트윗 갈무리
한차례 연장된 브렉시트 발효일(4월12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제1야당 노동당 제러미 코빈 대표에게 ‘국민투표’를 포함한 브렉시트 대안을 의회 표결에 부치는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메이 총리가 의회에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합의안 인준이 유일한 길이라고 고집해오던 태도에서 한발 물러나 제2국민투표 가능성까지 수용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유럽연합은 오는 10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메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브렉시트 발효일의 추가 연기를 요청할지를 포함해 의회의 표결 결과를 갖고 새로운 협상을 해야 한다. 기존 합의안에 대한 영국 의회의 인준이 없거나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브렉시트는 추가 연기되지 않고 12일 발효된다.
이와 관련해, 메이 정부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에게 정부 제안을 담은 서한을 작성 중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부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총리의 서한은 의회가 다음주에 브렉시트에 대해 어떠한 합의를 하더라도 이를 ‘확정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이 포함될 것이며 이는 노동당의 요구에 조응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메이 총리는 노동당 대표단과 4시간30분에 걸친 실무회담을 열어 의회가 브렉시트 해법을 도출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여야 논의가 “구체적이고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정부 쪽에서 메이 총리를 비롯해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 스티브 바클레이 브렉시트 담당 장관, 줄리언 스미스 하원 보수당 원내대표 등이, 노동당에선 제러미 코빈 대표를 비롯해 노동당 예비내각의 키르 스타머 브렉시트 담당 장관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문제는 의회가 브렉시트 해법을 두고 여전히 사분오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원은 최근 두 차례나 잇따라 브렉시트 해법의 다양한 대안들에 대한 의향투표를 벌였으나 단 하나도 과반 찬성의 합의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주 초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유럽 관세동맹 잔류 같은 대안에도 양보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완강히 반대하는 방안인 만큼, 당내에서 큰 논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영국 정부 청사와 의회 의사당으로 쓰이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노동당에서도 4일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의원 25명이 제러미 코빈 대표에게 공동명의 서한을 보내, 메이 총리와의 협의에서 국민투표가 필요 없는 더 나은 브렉시트 합의를 확보하기 위한 “예외적 조처로 나아가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제2국민투표는 극우주의자들에게 악용당하고 노동당 핵심 지지층의 신뢰를 훼손하며 다음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을 약화시킨다”는 구실을 들었다.
한편, 4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하원 본회의장에선 의원들이 조세법안을 심의하던 중 천정에서 갑자기 누수가 생겨 물이 줄줄 떨어지는 바람에 의원들이 급히 자리를 피하고 정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의회 안팎에선 물이 새는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을 의회의 심각한 무능에 빗댄 푸념도 쏟아졌다.
닐 오브라이언 의원(보수)은 트윗에 천정에서 물이 빗줄기처럼 새는 사진을 올리고 “하원 회의장에 새로운 물 풍경! 비 때문에 회의를 멈춘 적이 전에는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썼다. 줄리아 로페즈 의원(보수)은 트윗 글에 “천정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진 물 폭탄-이건 성서의 대홍수가 우리 모두를 쓸어가려 밀려온 것인가?”라고 자조했다. 저스틴 매더스 의원(노동)도 트윗에 “하원 회의장에 앉아 천정에서 비 오는 소리를 듣다니. 의회가 정말로 붕괴했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일부 의원들은 “하원 회의장 위쪽 기자실의 하수가 샌 것 같다”는 불안한 추측성 글도 올렸다. 이에 대해 하원 기자실 담당관은 트윗 답변을 통해 “누수는 긴급히 조처해 막았다. 하원 설비보수팀이 현재 파손 부위를 점검하고 있다”는 글을 먼저 올렸다. 곧이어 올린 두 번째 트윗 글에선 “하수가 샌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