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대안 8개안을 모두 부결시킨 다음날인 28일 영국 일간 <가디언>의 1면.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의회가 결국 의견을 냈다. 노(No). 노. 노. 노. 노. 노. 노. 노.”
28일치 영국 일간 <가디언>의 1면 제목이다. 27일 영국 하원이 교착 상태에 빠진 유럽연합(EU) 탈퇴 방식에 대해 8가지 대안을 놓고 진행한 의향 투표에선 단 하나의 합의안도 나오지 않았다. ‘유럽 관세동맹 잔류’(찬 264표-반 272표)와 ‘제2국민투표’(찬 268표-반 295표)가 그나마 절반 찬성에 근접했을 뿐, 브렉시트 철회, 합의 없는 결별(노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가입 등 다른 방안들은 큰 표 차로 부결됐다.
메이 총리는 이날 집권 보수당의 백벤처 그룹(평의원 모임)인 1922년위원회에 참석해 자신이 유럽연합과의 협상으로 만든 브렉시트 합의문을 통과시키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으나 먹히지 않았다. 하원이 애초 29일로 예정됐던 브렉시트 발효일을 미뤄가면서까지 해법을 찾아보려 했던 시도가 실패하면서, 브렉시트 정국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가디언>의 정치 칼럼니스트는 “오늘 일은 메이 총리의 집권당이 맞닥뜨린 크나큰 위험을 보여주지만, 보수당 만의 위험이 아니다. 브렉시트 탓에 나라가 어느때보다 깊게 분열돼 있으며, 우리 모두가 일종의 내전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들도 하나같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브렉시트 정국에 대한 개탄을 28일치 1면에 테리사 메이 총리의 사진과 함께 큼지막한 헤드라인으로 쏟아냈다. “메이, 자결하다”(<텔레그래프>), “메이가 ‘브렉시트 합의’에 대한 반대 그룹의 지지를 얻으려는 마지막 간청으로 사퇴를 제안하다”(<파이낸셜 타임스>), “그가 뭘 더해야 하나?”(<익스프레스>), “그의 희생이 헛되이 끝날까?”(<데일리 메일>), “브렉시트에 투표하세요, 난 나갈테요”(<메트로>)…. 일간 <선>은 메이 총리의 이름과 출구를 합성해 “마침내 테렉시트, 아임 오프(난 그만 둔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27일 저녁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대안 8개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던 시각에 의사당 바깥에 글로벌 시민단체 아바즈가 “우리가 투표하게 하라”는 주장을 담은 전광 불빛이 빛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당혹스럽긴 하원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안 오스틴 의원(무소속)은 트위터에 “이 무슨 소극인가, 의회가 8개 선택안을 다 거부하다니. 내 이럴 줄 알고 의향 투표를 반대했다”고 썼다. 드루 헨드리 의원(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위기에 빠진 의회. 대혼돈에 이어진 난장판, 이곳에서든 국제적으로든 굉장한 구경거리”라고 자조했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의회가 다음주 월요일(4월1일)에 2차 토론을 하기로 의사 일정에 합의했으며, 토론이 계속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29일 브렉시트 합의문을 3차 표결에 부칠 계획이다. 합의문에 완강하게 반대해온 보수당의 브렉시트 강경파 일부가 메이 총리의 사퇴 의사 발표로 심경의 변화를 내비치고 있으나, 표결이 통과될 가능성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 도박사들은 벌써부터 차기 총리를 점치면서,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을 1위로, 보리스 존슨 의원은 2위, 제러미 헌트 외교장관은 3위로 꼽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한편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7일 영국 하원의 표결을 앞두고 “유럽연합은 영국에서 갈수록 많아지는 잔류 희망자들을 배신할 수 없다”며,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영국의 참여와 브렉시트 장기 연장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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