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영국의 탈퇴(브렉시트) 발효일 잠정 연기를 결정한 이튿날인 지난 22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이끌고 있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나라 안팎에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국내에선 2년을 넘게 끌어온 브렉시트 협상이 여야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면서 퇴진 압박이 거세고, 유럽연합에선 그를 로봇에 빗대며 지도력을 문제삼는 불만이 노골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메이 총리가 집권 보수당의 브렉시트 강경파들로부터 후임 총리에 권력을 넘겨줄 일정을 공표하라는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앞서 25일 영국 하원은 교착상태에 부닥친 브렉시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메이 총리의 합의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안들을 놓고 27일 결론이 나올 때까지 끝장투표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의회가 정부한테서 브렉시트 주도권을 빼앗아온 셈이다.
그러나 보수당 의원들 중 입각하지 않았거나 당직을 맡지 않은 ‘백벤처’ 그룹의 한 의원은 “메이 총리가 구체적 사임 날짜를 제시하지 않으면 의원들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메이 총리가 27일 자신의 사임 날짜를 밝힐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총리가 뭔가를 말해야 한다. 단지 자신의 합의를 지지해달라는 똑같은 말만 해선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텔레그래프>도 “메이 총리가 27일 의회에서 보수당 의원들로부터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지지를 대가로 사임 날짜를 밝히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26일 보도했다. 메이 총리는 27일 보수당의 백벤처 그룹인 1922년위원회 모임에 참석해 자신의 합의문 지지를 촉구하는 일정이 잡혀 있다.
메이 총리는 28일 저녁(현지시각) 자신과 유럽연합이 합의한 브렉시트 합의문에 대한 하원의 인준 표결을 세번째로 실시할 계획이지만 통과 전망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앞서 하원은 두 차례나 메이 총리가 제출한 브렉시트 합의문 인준을 부결시켰다. 그러나 보수당 일각에선 메이 총리의 사퇴를 조건으로 합의문을 지지하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23일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제2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브렉시트 주창자인 보리스 존슨 의원은 <텔레그래프>에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문은 끔찍한 협상으로, 오랫동안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협상의 두번째 국면은 처음과는 다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조건부 지지 의향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시각을 바꾼 이유로 “합의문을 지지하지 않는 투표가 자칫 브렉시트 자체를 무산시키는 협상으로 이어질 위험”을 들었다. 앞서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문을 처음 퇴짜 놓은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보수당 내 유럽회의론자 모임인 ‘유럽연구그룹(ERG)’의 제이컵 리스모그 의원이 메이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조건으로 합의문을 지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유럽연합 쪽에서 브렉시트 협상 그룹에 관여해온 벨기에 출신의 필리페 람버츠 유럽의회 의원은 26일 “메이 총리가 정치 지도자로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인간적 기량이 전혀 없다. 그건 정말 끔찍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유럽연합과의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마치 로봇 같은 접근법으로 시간이 갈수록 유럽 지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서 기자들에게 “우리가 메이의 태도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하는 능력이 없고, 자신의 내각 안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것을 영국 내각과 의회뿐 아니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도 다시 목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완곡하게 표현하는 외교적 수사마저 접은 직설법으로 메이 총리의 협상 방식을 비판한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메이 총리가 2017년 총선 과정에서 ‘메이 봇’(‘메이’ 총리의 이름과 ‘로봇’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런 태도는 집권 이후에도 대중의 관심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짚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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