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연기’를 의결한 14일, 의사당 밖의 한 트럭에 브렉시트를 주도한 테리사 메이 총리(왼쪽부터),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 등 보수당 의원들을 희화화한 인형들이 실려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브렉시트 시한을 불과 보름 앞두고, 영국 의회가 14일 ‘탈퇴 연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여부를 다시 묻는 제2국민투표 방안은 거부했다. 이로써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정치권의 극심한 분열은 29일로 예정된 탈퇴 시점을 일단 미루고 최소 몇달간의 시간을 버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유럽연합(EU)은 브렉시트 연기를 위해선 영국을 뺀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밝혔다.
영국 하원은 이날 테리사 메이 정부가 제출한 브렉시트 연기안을 찬성 413표, 반대 202표로 통과시켰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전했다. 노동당 등 야권이 제안한 제2국민투표 추진안은 찬성 85표, 반대 334표로 부결됐다. 특히 제2국민투표안은 ‘기권’이 223표나 나왔는데 노동당 의원 201명이나 가세해 눈길을 끌었다.
하원은 12일엔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 수정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13일에는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과 결별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거부한다”는 의원안을 가결했다. 최근 사흘 새 잇따른 표결에서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안, 합의 없는 탈퇴, 제2국민투표까지 모두 퇴짜를 놓은 것이다. 이로써 브렉시트는 퇴로가 없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고, 메이 정부는 다시 한번 유럽연합 쪽과 힘겨운 막판 협상을 요청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날 통과된 합의안은 메이 총리가 20일까지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세번째 표결을 진행해, 이 안이 통과되면 탈퇴 시점을 6월30일까지 석달 연장하기로 유럽연합에 요청하는 내용이다. 영국 정부는 이 합의안마저 부결되면, “한층 더 장기간에 걸쳐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메이 총리는 의회가 합의안을 계속 부결하면 탈퇴가 점점 늦어진다는 점을 들어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할 자격이 유지되는지도 또다른 현안이다.
문제는 유럽연합의 동의 여부다. 유럽연합 헌법 구실을 하는 리스본 조약 제50조는 회원국이 탈퇴 의사를 통보하면 2년 안에 탈퇴 조건에 대한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회원국 자격을 상실하며, 시한을 연장하려면 나머지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다음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 여부와 그에 따른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은 14일 “만일 영국이 브렉시트 전략을 재고하고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면 27개 회원국들에 (브렉시트 시한의) 연장을 받아들이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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