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21일 영국 하원에서 15일 부결된 브렉시트안에 대한 대안의 뼈대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 정치권은 이 대안이 부결된 안과 큰 차이가 없다며 “메이의 플랜B는 플랜A”라고 비꼬았다. 런던/AFP 연합뉴스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15일 의회 표결에서 ‘역사적 대패’를 당했던 테리사 메이 총리가 부결된 안에서 큰 변화가 없는 ‘대안’을 내놨다. 영국 정치권에선 “메이 총리의 플랜 비(B)는 곧 플랜 에이(A)”라고 비꼬며, 그가 창조적인 대안 대신 강경파인 ‘집토끼’를 설득하는 길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메이 총리는 21일 영국 하원에서 “지난 주 표결 결과 (브렉시트에 대한) 정부의 접근을 바꿔야 함이 분명해졌다. 의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당파를 넘은 여러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세부 내용을 공개할 대안과 관련해 △의회와 좀 더 대화하는 자세를 갖고 △브렉시트 후에도 노동권과 환경기준을 강화하며 △‘백스톱’(backstop) 조항에 대한 보수당과 민주연합당(DUP)의 우려에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공개했다. 메이 총리는 29일 브렉시트 수정안에 대한 2차 표결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비비시>(BBC) 등은 “대안이 기존 안에서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진 않았다”고 꼬집었다.
지난주 의회 표결에서 230표 차 대패를 당한 메이 총리 앞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보수당 내의 친유럽연합(EU) 성향인 잔류파와 야당 노동당을 설득하는 ‘산토끼’ 잡기였다. 이들은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을 수습하려면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이 유럽연합(EU) 관세동맹에 남거나 제2의 국민투표에 나서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영국 언론 역시 정부 내에 원안을 폐기한 뒤 브렉시트 후에도 영국이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무기한 잔류하는 쪽으로 방침을 전환해 여당 내 친유럽연합파와 야당 일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메이 총리가 택한 길은 브렉시트 강경파를 달래는 ‘집토끼’ 굳히기였다. 메이 총리는 국민투표 재실시 요구에 대해선 “이런 의견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사회에 통합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거부했고, 3월29일로 다가온 브렉시트 일정을 미루는 문제에 대해서도 “단순히 결정의 시기만을 늦추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 대신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강경파와 북아일랜드 지역정당인 민주연합당이 반대해 온 ‘백스톱’ 조항에 손을 대기로 했다. 백스톱 조항이란 2020년 말까지 영국이 유럽연합 관세동맹에 잔류하면서 유럽연합과 무역협상을 진행하고, 이 과도기가 지나서도 해법이 도출되지 않으면 최소한 북아일랜드는 계속 유럽연합 공동시장에 남겨둔다는 안이다. 이에 대해 보수당 강경파는 “영국이 영원히 유럽연합에 발목이 잡힌다”는 이유로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가 결국 영국에서 분리될 것”이라며 결사 반대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메이 총리가 이들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백스톱 조항을 어떻게 완화할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메이 총리의 외고집에 영국 여야 양쪽 모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친유럽연합파인 사라 울러스턴 보수당 의원은 메이 총리의 태도가 “지난주 부결이 없었다는 것 같았다. (메이 총리가 제시한) 플랜 비는 곧 플랜 에이였다”고 꼬집었다. 이벳 쿠퍼 노동당 의원도 “왜 (브렉시트 이후에도) 관세동맹에 남는다는 것 같은 레드 라인을 놓고 표결을 벌이지 않느냐. 그렇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의 미셸 바르니에 브렉시트 협상대표 역시 백스톱 조항에 손을 댄다는 메이 총리의 대안에 대해 “영국은 유럽연합과 향후 관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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