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영국 의회 하원이 테리사 메이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 표결에 앞서 토론을 열고 있다. 불신임은은 찬성 306표 대 반대 325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불과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 발효일을 앞두고 영국 정치가 대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다. 가장 안정적이라던 영국의 정당 시스템이 정치적 득실에 따른 롤러코스터 투표, 대안 부재, 책임 떠넘기기의 장이 됐다.
영국 의회는 지난 15일 브렉시트 합의안을 사상 최대 표차로 부결한 데 이어, 하루 뒤인 16일에는 야당이 제출한 정부 불신임안도 부결했다. 찬성 306표, 반대 325표라는 근소한 표차였다. 보수당과 민주연합당 등 여권은 반대, 노동당 등 야권은 찬성에 몰표를 던졌다. 전날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거부한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민주연합당이 이번에는 메이 총리를 구했다. 메이 총리는 지난달 보수당의 당대표 신임투표에서 승리한 데 이어 한달 만에 다시 정치적 위기를 넘겼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다.
메이 총리는 표결 직후 연설에서 “(모든 의원이) 브렉시트의 출구를 찾기 위해, 사익은 제쳐두고 건설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야당 지도부와 대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노동당이 지금까지 동참하지 않아 실망스럽지만 우리의 문은 열려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지금 내각은 좀비 정부”라며 “총리는 국정 통제력을 상실했고, 정부는 통치 능력을 상실했다”고 맞받았다. 그는 “정부가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테이블에서 치워야 논의에 참가하겠다”고 못박았다.
16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 자신의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된 뒤 연설하고 있다. 런던/연합뉴스
앞서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메이 총리는 “뒷날 역사책이 쓰여질 때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이행했는지 물을 것”이라며 가결을 촉구했었다. 그 때도 코빈 대표는 “총리는 완전히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일축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한 의원도 “총리가 ‘판타지 랜드’에 있다”며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고 리스본 조약 50조(의 발효)를 연장해 국민이 결정하게 할 때”라고 반박했다.
어느 쪽도 브렉시트 출구의 묘안을 알지 못한 채 테리사 메이 총리의 등만 떠미는 모양새다. 이번에 메이 총리의 ‘수명’을 연장시킨 다수의 보수당 의원들이 메이 총리를 진정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보수당 강경파가 정부 불신임안에 반대한 것은 야당에 정권을 넘겨줄 수 없어서였다.
브렉시트 합의안 반대의 양대축이었던 집권 보수당 강경파와 노동당도 반대 이유는 정반대다. 보수당은 ‘더 확실한 결별’을 요구한다. 노동당은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면서도 메이 정부의 기존 합의안에는 반대하며, 관세동맹을 유지하는 느슨한 브렉시트를 주장한다. 제2야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원칙적으로 브렉시트 자체에 반대하며 ‘유럽연합 잔류’를 겨냥한 제2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당의 코빈 대표는 국민투표 재실시 방안에 대해선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정부 불신임 재추진과 조기총선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의회 전체가 10인10색의 동상이몽에 가깝다.
16일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테리사 메이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당장은, 메이 정부가 21일까지 의회에 내놓을 ‘플랜 비(B)’의 내용과 각 정당의 평가, 유럽연합의 반응과 후속 조처에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은 오는 3월29일로 규정된 브렉시트 발효 시점을 2020년까지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복수의 유럽연합 소식통을 인용해 “유럽연합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부결된 사정을 감안해 내년까지 영국의 회원국 지위를 연장하는 법적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안 표결 전날인 14일, 유럽연합은 7월말까지 영국에 추가 협상 시간을 주는 ‘절차적 임시 연장’을 허용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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