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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이혼합의금·국론 분열…영-EU, 브렉시트 협상 험난 예고

등록 2017-03-14 18:07수정 2017-03-14 20:06

‘리스본조약 50조 발동’ 의회 통과
EU 집행위 분담금 73조원 압박에
영국, ‘차라리 협상 결렬’ 불응 뜻

스코틀랜드 “EU 잔류” 독립투표 재론
불확실성 증대 영국 경제에 큰 짐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협상 개시 법안을 정부안대로 통과시킨 13일 영국 및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들이 의회 앞에서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에서 유럽연합 시민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협상 개시 법안을 정부안대로 통과시킨 13일 영국 및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들이 의회 앞에서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에서 유럽연합 시민의 법적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이제 영국내 절차를 모두 마치고, 유럽연합(EU)과 한치의 양보도 없을 길고도 힘든 협상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영국 의회 상·하 양원은 13일 정부가 제출한 ‘유럽연합(EU) 탈퇴법안’을 원안대로 최종 가결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이로써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 쪽과 탈퇴 협상을 공식 개시하는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할 권한을 얻게 됐다.

이날 의회는 정부가 제출한 브렉시트 협상 통보법안의 수정안 2개를 모두 부결시키고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법안은 이르면 14일 오전(현지시각)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가를 받는 즉시 발효된다. 메이 총리는 여왕의 재가를 받는대로 하원에 출석해 향후 브렉시트 협상의 복안을 밝히고, 의회의 협력을 요청하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앞서 상원과 하원은 영국내 유럽연합 시민권자의 거주권 보장과 탈퇴협상 합의안에 대한 의회의 ‘의미 있는’ 거부권 부여를 각각 추가한 2개의 수정안을 놓고 이견을 보였지만, 상원이 선출직인 하원의 표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원은 집권 보수당이 최다 의석을 갖고 있다.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과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관계 단절을 뜻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천명해왔다.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누렸던 무관세 및 단일시장 접근권을 모두 포기하고, 국경통제·이민정책·교역체결에서도 일대일 협상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브렉시트 이후 주권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목적에 더해, 브렉시트 협상과정에서 영국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메이 총리가 유럽연합에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을 통보하는 시기는 이달 말께나 돼야 할 것이라고 <비비시> 등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그 뒤부터는 최장 2년에 걸쳐 영국 정부 협상대표와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유럽연합집행위원회 협상대표가 본격적인 ‘이혼 협상’을 벌이게 된다.

영국 <가디언>은 13일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의 <이제 난제가 시작된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인용해, 영국이 브렉시트 협상에서 직면한 핵심 도전들을 5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시간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유럽연합과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유럽 단일시장 접근권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다른 쟁점들이 먼저 합의가 돼야 하는 까닭에, 2년이란 협상 시한은 영국이 자국에 유리한 무역협정을 이끌어내기엔 너무촉박하다. 양쪽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협상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상 연장 없이 원만한 ‘이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자동적으로 ‘탈퇴’ 처리된다. 그럴 경우 영국은 각종 지원금과 무관세, 무비자 여행 등 유럽연합이 제공하는 모든 혜택에서 배제된다.

둘째는 이른바 ‘이혼 합의금’으로,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다. 유럽연합은 2014~2020년 예산계획 확정 당시 영국이 약속한 분담금을 포함해 약 600억유로(약 73조원)의 재정의무를 이행하고 나가라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이혼 합의금 지불을 다른 의제들과 연계해 영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반면 메이 총리는 지난주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영국민이 매년 유럽연합 예산에 ‘엄청난 금액’을 계속 내려고 브렉시트에 투표한 게 아니다”며 유럽연합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나쁜 협상(bad deal)’보다는 차라리 ‘협상 결렬(no deal)’이 낫다고도 했다. 이 문제가 타결되지 않을 경우 협상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수도 있다.

영국 의회 상원이 13일(현지시각) 정부의 브렉시트 발동 법안을 통과시키기 앞서 전체 회의를 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 의회 상원이 13일(현지시각) 정부의 브렉시트 발동 법안을 통과시키기 앞서 전체 회의를 열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셋째,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의 정식 국호)의 4개 홈네이션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인 니콜라 스터전 수석장관은 13일 스코틀랜드 의회 연설에서, 다음 주에 영국 정부에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코틀랜드는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잔류’ 의견이 62%로 ‘탈퇴’(38%)보다 훨씬 많았다. 스코틀랜드는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 연합왕국에서 탈퇴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넷째, 국론 분열이다. 지난해 국민투표 결과만 봐도 영국민의 48.1%는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투표 직전까지도 대다수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부결을 점쳤던만큼 결과가 준 충격은 더욱 컸다. 피치는 향후 브렉시트 협상의 다양한 현안들을 놓고 영국민이 팽팽한 격론을 벌일 경우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끝으로, 불확실성의 증대다.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고평가된 파운드화를 유지하면서 ‘유럽 금융의 허브’로서 유럽연합 단일시장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러나 하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은 금융산업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브렉시트에 대한 유럽연합의 반응은 차갑고 단호하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극우 정치세력이 유럽연합 탈퇴를 공언하며 세를 키우고 있는만큼,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잇따라 터져나올 유럽연합 탈퇴 움직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영국은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가게 됐으며, 지난해 국민투표 이후 근심 가득했던 시간이 앞으론 갈등이 더욱 커지는 시기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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