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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브렉시트는 14세기 ‘소작농의 반란’이 재연된 것”

등록 2016-06-29 16:53수정 2016-06-30 10:44

인터뷰, 버밍엄대 마틴 파월 교수
버밍엄대학 마틴 파월 교수 인터뷰
“브렉시트는 정치권을 한방 먹인 것”
버밍엄대 마틴 파월 교수
버밍엄대 마틴 파월 교수

영국 버밍엄대학의 마틴 파월 교수는 28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는 영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민심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브렉시트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정치권을 ‘한방 먹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노동계급과 취약계층의 정서적 불안감과 실질적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영국이 앞으로 유럽연합 및 다른 국가들과 어떤 형태의 무역협정을 맺느냐에 따라 경제적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파월 교수는 사회정책 분야의 권위자로, 학술지 ‘사회정책과 행정’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지난해에는 영국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권 아래에서 사회정책 변화를 분석한 <연립정부와 사회정책>의 편저자로 참여했다. 그가 편저한 <복지혼합>은 한국에서도 출판됐다.

-이번 투표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이번 브렉시트는 14세기 영국을 휩쓴 ‘소작농의 반란’이 현대에 재연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당시 흑사병과 고율의 세금으로 피폐해진 지방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런던까지 점령하고, 캔터베리 대주교와 재무장관을 살해했다. 성난 민심을 읽지 못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다소 과장된 비교지만, 이번 투표는 영국 정치 엘리트들이 민심과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은 맞다. 하원의원 650명 가운데 500명이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이와 같은 상황은 지독하게 역설적인데, 노동당과 사회정책학 교수들이 보수당 및 자본가들과 어깨를 걸고 한편에 서고, 그 맞은편에 노동계급이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 두 가지로 단순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투표 결과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몇가지 대목은 있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 저학력층, 그리고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의 주민들이다. 스코틀랜드과 북아일랜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잘못된 근거에 기반해서 투표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이민 문제가 핵심적인 변수인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이런 정서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캐머런 총리는 2010년 총선 때부터 이민자의 수를 연간 10만명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만 순이민자 수는 30만명을 넘어섰다. 이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이번 투표가 지켜지지 않은 공약에 대한 항의의 의미가 있었다.”

- 이민 외에도 다른 변수가 있을 듯하다.

“일부의 영국인들에게 이번 투표는 유럽연합을 떠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의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불만이 있는 이들에게 이번 투표는 여야를 포함한 제도정치권 모두에게 한방 날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번 투표가 불러올 엄청난 결과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일부는 이 투표를 주권의 문제로 인식했다. 이를테면, 영국 정부가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범죄자를 추방하려는 움직임이 유럽연합의 규정에 의해 제동이 걸린 사례가 있었다. 일부 신문들은 유럽연합 때문에 영국의 치안이 위협을 받는다는 식으로 확대 포장했다. 물론 이 대목도 주목할 여지는 있다. 흔히 ‘민주주의 결핍’이라 일컬어지는, 유럽연합 정책이 역설적으로 개별 국가의 대의민주주의를 왜곡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하지 않고 임명된 다수의 지도부들 때문에, 유럽연합은 전세계에서 가장 덜 민주적인 제도로도 불리는데, 이들이 지난 몇년 사이 그리스에서 시민의 손으로 선출된 권력을 겁박하고 협박해서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나.”

- 브렉시트가 영국에게 자해적인 결정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전망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치권과 기업들, 학자들에게 일격을 날린 것 같다. 여기에는 정부 혹은 전문가 그룹이 내놓은 전망에 대한 불신도 작용하는 듯하다. 두가지 예를 보자. 1990년 영국은 당시 유럽경제공동체가 추진하던 유럽환율제도에 가입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여기에 가입하지 않으면 경제적인 파장은 재앙과 같을 것이라고 겁박했다. 그런데 결과를 보니 파운드화 가치가 불안정해지고, 이자율이 급등했다. 영국 정부는 파운드화를 지키기 위해 나랏돈을 수십억 파운드 쏟아부은 뒤, 2년 만에 유럽환율제도를 탈퇴했다. 또 하나, 이번 투표를 앞두고 영국 정부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할 때, 2030년 기준 영국 가구의 평균 소득 감소분은 4300파운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연간 추정치도 수시로 조정하는 상황에서, 14년 뒤의 전망치를 일반인들이 얼마나 신뢰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투표 결과의 경제적인 영향을 어떻게 보는가.

“단기적인 영향은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우리가 이미 목도하고 있다. 장기적 영향은 모르겠다. 앞서 얘기한 유럽환율제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과를 속단하기 힘들다. 다만, 영국이 유럽연합 및 다른 국가들과 어떤 형태의 무역협정을 맺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저소득층이 정작 그 파장에 따른 부담을 가장 많이 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많은 영국인들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일부 그런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영국의 원주민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이민자가 떠맡는 경우도 많았다. 예컨데, 영국이 유럽의 공동체에 가입하기 이전인 지난 50~60년대에는 흑인 노동자들이 그런 일을 했고, 이제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보다는, 정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치인들도 이런 반이민적인 정서에 편승했다. 고든 브라운 전 총리는 재임 당시에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에게”라는 구호를 썼다. 영국 원주민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갖고, 경제적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대안은 이민자들 유입을 막는 것이라는, 쉽고 편한 논리가 만들어지고 유통됐다.”

-그 논리가 얼마다 타당하다고 보는가.

“기업 입장에서야,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의 유입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통계를 보면, 이민자들은 영국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된다. 대체로 젊고 학력도 높은 이주민들은 영국 원주민들보다 세금도 더 많이 내는 반면, 연금 등 복지혜택은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영국 입장에서는 이주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당신이 만약 상대적으로 낙후한 남부 웨일스에 살거나 동부 잉글랜드에 살고 있다면, 혹은 실업이나 저임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라면, 그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 혜택은 기업과 이주민에게만 돌아간다고 판단할 것이다.”

-영국의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있을 듯 하다.

“보수당에는 대지진이 일어난 셈이다. 총리가 물러나게 됐다. 노동당에게 닥친 충격은, 말하자면 리히터 규모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 같다. 그림자 내각이 대거 물러났고, 제러미 코빈 대표는 불신임을 당했다. 한가지 참고할 사항은 코빈은 체질적으로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인사라는 점이다. 노동당은 1983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유럽연합의 전신이었던 유럽경제공동체(EEC)를 탈퇴하는 내용을 핵심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이와 같은 공약을 만드는 과정을 주도했던 마이클 푸트 당시 당 대표나 토니 벤 의원 등은 반유럽연합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코빈 대표는 이런 정서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일견 일맥상통하는 투표 결과 때문에 정작 자신이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앞서 시민들과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거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고 했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그런 부조화는 노동당에서 더 심하다고 본다. 노동당은 원래 노동계급과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유럽연합 잔류를 선택한 노동당과 달리, 노동당이 대변한다고 말하는 이들 대부분은 유럽연합 탈퇴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지난 총선 결과를 보여주는 지도를 보면, 노동당의 지지기반은 주로 런던과 주요 대도시들이다. 대도시에서 교육 수준도 높고, 생활 수준도 중간 이상인, 진보적인 일간지 <가디언>을 읽는 중산층이다. 노동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노동계급이 과거만큼 노동당을 ‘나의 정당’으로 지지하는지는 의문이다. 노동당과 거리가 멀어진 이들은 새로운 메시지에 이끌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자리를 극우정당이 채우고 있다.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의 반이민정서에 편승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럽연합을 떠나자’.”

-그런 부조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무엇을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분명하다. 투표 결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투표에 참여한 대다수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브렉시트를 택한 시민들을 ‘인종주의자’, ‘편협한 인간들’, ‘멍청이들’로 표현하는 말들이 돌고 있다. 우리 국민의 52%가 그런 사람들이라면 매우 불행한 일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다수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경멸한다면, 그들을 설득하고 함께할 수가 없다. 심지어 투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투표를 하자는 의견까지 나온다. 잉글랜드와 아이슬란드의 (축구) 경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경기하자고 할 수는 없다. 노동당이 더 이상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마음이 돌아선 이들을 이런 식으로 재단해버려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과 취약계층의 정서적인 불안함과 실질적인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는 분명히 갈리겠지만,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그러한 접점을 유지했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버밍엄/글·사진 김기태 통신원


[디스팩트 시즌3#9_남들은 알려주지 않는 브렉시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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