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회담에서 독일·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유럽 6개국 외무장관들이 모여 브렉시트 이후 대응 방안을 모색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자 유럽연합 쪽은 “빨리 나가라”며 탈퇴 협상의 신속한 개시를 촉구했다. 국민투표 전에는 영국의 잔류를 강하게 호소했지만, 이젠 브렉시트의 현실화에 따른 후폭풍을 서둘러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서두를 필요 없다”며 오는 10월 새 총리 정부가 들어선 다음 탈퇴 협상을 시작하면 된다는 태도다.
유럽연합 창설을 주도한 6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외무장관들은 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브렉시트 대책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영국은 브렉시트 절차를 속히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독일 <아에르데>(ARD) 방송 인터뷰에서 “10월까지 기다리는 건 말이 안 된다. (브렉시트는) 원만한 이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도 “불확실성이 길어져 금융시장의 혼란과 정치적 후폭풍이 지속되길 원치 않는다. 긴급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는 프랑스·네덜란드 등 내부에서 불거져 나오는 유럽연합 탈퇴 목소리 등 ‘이탈 도미노’의 싹을 일찍 잘라버리고, 브렉시트에 따라 출렁이는 시장을 조속히 안정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에 특별히 고약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며 외무장관 회의 결과와는 온도차를 보였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 등은 메르켈 총리가 유럽연합 6개국 외무장관 회의 참석자들을 만난 뒤 “(탈퇴 협상이) 장기화돼서는 안 되지만, 나는 단기 프레임을 위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적절하고 우호적인 협상이 돼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가 브렉시트를 유럽연합의 ‘개혁’과 결속력을 높일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따라온다.
유럽연합의 압박에도 영국은 “서두를 필요 없다”는 분위기다. 오는 10월에 사퇴하겠고 밝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신임 총리가 ‘리스본 조약 50조’(유럽연합 탈퇴 규정)의 발동 시기를 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비쳤다. 영국 내 탈퇴파도 조속한 협상 개시에 부정적이다. 영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며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대한 영국 내부의 반발 움직임도 커지는 등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투표해야 한다”는 의회 청원에 서명한 사람은 25일 밤 264만3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잔류를 지지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이 투표결과 확정 뒤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처럼 (투표결과를 되돌릴) 마법을 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 등 영국의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한편, 오는 28∼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참석하는 유럽연합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는데, 이 자리에서 브렉시트 협상 개시 여부를 두고 유럽 대륙 나라들과 영국 사이의 충돌이 예상된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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