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런던 화이트채플역 부근 노점에서 히잡을 쓴 여성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런던 동쪽에 있는 화이트채플은 이민자들이 많은 곳이다,
24일 런던 동북쪽 화이트채플역에서 내리자 히잡을 두른 여성들과 페즈(무슬림 남성들이 쓰는 챙 없는 모자)를 쓴 남성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런던 안에서도 화이트채플은 특히 이민자들이 집단적으로 몰려사는 곳이다. 많은 곳임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런던 금융가인 ‘시티’ 지역 북쪽에 위치한 화이트채플은 19세기 말 연쇄 살인마 잭 더 리퍼가 이 거리에 살던 매춘부들을 연이어 살해한 범죄 무대이기도 했을 만큼 가난한 우범지대였다. 지금도 좁은 골목 등은 예전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중심가인 시티 지역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화이트채플갤러리 같은 미술관과 다양한 카페, 길거리 벼룩시장 등 색다른 도시가 됐다. 특히 중동 등 이민자들이 가난한 이 거리에 자리잡으면서 화이트채플은 이국적 모습을 강하게 띄고 있다. 거리의 사람들 대부분이 무슬림 복장을 한 이들이 많아, 영국이라기보다는 중동의 어느 도시를 온 느낌이다.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한 데 대해, 이곳 이민자들 안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렸다.
방글라데시 출신 남성인 세라잘은 “우리(방글라데시) 공동체 안에서도 브렉시트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세라잘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영국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국민투표 결과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 한쪽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리투아니아 출신 건설 노동자 로마나스는 “나는 17년 전에 영국으로 왔기 때문에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동유럽 출신 등이) 새로 영국에 들어와서 일하기는 점점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역시 “(브렉시트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화이트채플역 부근 노점에서 옷을 파는 방글라데시 출신 상인인 자히드는 “이곳에는 영국인 말고도 유럽 출신 고객들도 많이 오는데 이제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 시름에 차 있었다.
하지만 이민자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브렉시트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자히드와 마찬가지로 화이트채플역 부근 노점에서 옷을 파는 상인 알리(40)는 “나는 (탈퇴에) 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란 출신으로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알리는 “이민자들이 대책없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 집도, 일자리도 부족하다. 아들이 18살인데 취직하기도 어렵다. 1명 구하는 일자리에 30명씩 지원한다. 병원에 가도 2주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리는 “난민은 서구가 중동 문제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생기지도 않았을 문제다. 이민자 유입이 너무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 온 지 이미 오래돼 영국시민권을 얻은 이민자들은 나중에 들어온 이민자들로 인해 자신들의 복지혜택이 줄어들고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에 대해 오히려 불만인 것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샤(31)는 자신 같은 비유럽권 출신은 이전과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샤는 “(유럽연합 안의) 동유럽 출신들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비유럽 출신은 달라질 게 별로 없다. 인종차별 문제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문제다. 브렉시트를 한다고 해서 악화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투표 당일까지만 해도 ‘아임 인’(I’m in)이라고 쓴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이들이, 개표 결과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런던 시내 중심가 트래펄가 광장에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리스 존슨 바보”, “유럽에 남길 원한다”고 쓴 팻말을 들고 가는 이들이 일부 보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런던/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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