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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영국, 어쩌다 브렉시트까지 갔을까

등록 2016-06-24 16:17수정 2016-06-24 16:27

브렉시트 캠페인에 앞장선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그의 부인 마리나 휠러가 23일(현지시각) 영국 북런던의 한 투표소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브렉시트 캠페인에 앞장선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그의 부인 마리나 휠러가 23일(현지시각) 영국 북런던의 한 투표소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
‘마이웨이’ 외친 영국, 그 배경엔
40여년 이어져 온 유럽 회의주의
결정타는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
영국이 43년 만에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했다. 개표가 완료된 24일 오전 7시께(현지시각) 국민투표에서는 탈퇴가 51.9%로 잔류 48.1%보다 3.8%포인트 앞섰다. 이번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는 등록 유권자 4650만명 가운데 72%가 투표에 참여했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이자 유럽연합의 주축 가운데 하나인 영국이 탈퇴를 선택하면서 유럽연합을 넘어선 파급이 예상된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를 택한 것은 40여년 간 이어져 온 유럽 회의주의의 결과였다. 유럽연합 탈퇴 캠페인의 뿌리는 영국이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당의 당시 공식 정책은 10년여 뒤 탈퇴하는 것이었으며 보수당의 상당수도 늘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존 메이저 전 총리(1990~1997년)가 현직이던 때 뜨거웠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란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1997~2007년) 때 잠잠했다가 2000년대 후반께 영국 경제가 휘청이며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가디언> 보도를 보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권좌에 오른 뒤 보수당이 유럽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는 일을 경계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민정책에 대한 불만 속에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급격히 떠오르고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서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수년간 보수당 안팎에서 압박을 받아온 캐머런 총리는 결국 2013년 1월 `블룸버그 연설’에서 2017년 전에 국민투표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만해도 보수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브렉시트 투표 또한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은 2015년 5월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치르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영국 언론은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밀려드는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유럽연합 내 자유무역을 누리는 대가로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싸움으로 귀결됐다. 실제 유럽연합 탈퇴 캠페인 쪽에선 `통제를 되찾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영국 언론은 영국 정치인들이 2004년과 2007년 동유럽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영국 내 이민자 수 공개를 거부한 것에 더해 늘어나는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와 공공서비스가 줄고 있다는 인식을 막지 못하면서 대중의 불안이 커졌다고 전했다. 2010년 총선뿐 아니라 2015년 총선에서도 이민자를 억제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캐머런 총리의 모습은 `유럽연합에 속해 있으면 영국 정치인들은 힘을 쓸 수 없다’는 인상을 남겼다. 브렉시트 탈퇴 캠페인 진영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특히 투표를 앞두고는 노골적으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쟁점화하면서 대중의 불안감을 고조했다.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과 나이절 패라지 대표의 부상이 없었으면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를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를 공언한 2013년은 바로 영국독립당이 지방선거에서 이목을 집중시키며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다. 보수당 일각에서는 위기감을 느꼈으며 이는 캐머런 총리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

영국독립당은 이번 국민투표 과정에서 난민 행렬 사진에 `한계점’이라는 문구를 적은 포스터를 내놓는 등 노골적인 반이민 정서를 드러냈다.

하지만 결정타는 또 있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마이클 고브 영국 법무장관이 브렉시트 캠페인의 선두에 서며 브렉시트는 보수당 내 일부 극우 인사들과 영국독립당만 동의하던 소수의 틀을 단숨에 깼다. 존슨과 고브 모두 거침없는 입담의 소유자로 캐머런 총리와 오스본 장관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보여줬다. 특히 존슨의 대중적 인기는 브렉시트로 대중의 마음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브렉시트가 투표에서 승리하자 패라지 대표는 “영국 독립의 날”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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