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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브렉시트 해일, 국제질서 강타

등록 2016-06-24 16:10수정 2016-06-24 21:31

영국 탈퇴는 유럽연합 탈퇴의 선례
유럽에서 힘의 불균형 야기
미국의 대서양 양안동맹 약화
거꾸러진 ‘잔류’ 24일(현지시각)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된 가운데, 런던의 의회 광장 잔디밭에 ‘잔류’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는 포스터가 거꾸로 놓여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거꾸러진 ‘잔류’ 24일(현지시각)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결정된 가운데, 런던의 의회 광장 잔디밭에 ‘잔류’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는 포스터가 거꾸로 놓여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영국발 브렉시트 파고가 해일이 되어 국제질서를 강타했다.

영국이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국제질서의 한 축인 유럽연합은 큰 타격을 받게됐다. 이는 중동의 이슬람국가(IS),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과 함께,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흐트리는 지정학적 위기로 부상할 전망이다.

당장 유럽연합은 유럽통합의 추진력 상실은 말할 것도 없고, 존립의 위기까지 우려된다. 영국에서 현실화된 유럽연합 탈퇴는 다른 회원국에서도 선례가 될 전망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이번달 조사를 보면, 유럽연합에 대한 비호감 여론은 프랑스에서 61%, 스페인에서 49%, 독일에서 48%, 네덜란드에서 46%이다. 같은 조사에서 영국이 48%였음을 감안하면, 다른 주축 회원국에서도 영국에 못지않은 회의론이 만연한 상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내년 상반기 선거를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 반대를 내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당 국민전선과 자유당의 득세가 예상된다. 이들 국가들이 유럽연합 탈퇴를 감행하지 않더라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영국이 협상을 통해 유럽연합으로부터 따냈던 독자적인 이민정책 재량권 등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이는 유럽연합의 구심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회원국 내의 갈등 심화가 불보듯 뻔하다. 당장 헝가리는 오는 9월 정부 주도로 유럽의 이민정책을 놓고 국민투표를 벌인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동력이 이민 문제였음을 감안하면, 유럽연합은 안팍으로 더욱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현재 안으로는 동유럽 회원국으로부터의 이민 물결에다가, 밖으로는 중동으로부터 난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탈퇴는 유럽연합에게 현재의 이민 정책 변경을 강요하겠으나, 이는 자유로운 통행을 기본전제로 하는 유럽연합 질서의 중대한 후퇴를 의미한다.

회원국 중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영국의 탈퇴는 유럽연합에게 안보 측면에서도 중대한 차질을 의미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있기는 하나, 유럽 내에서 힘의 불균형이 어른거른다. 이미 유럽 역사의 숙제인 ‘독일 딜레마’와 ‘러시아 수수께끼’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유럽의 역사에서 통일이 돼도, 분열이 돼도 늘 유럽의 안보와 안정을 위협했다. 유럽 중앙에 위치한 독일 세력의 통일과 확장은 유럽 대륙의 패권국가로 치달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야기했다. 하지만, 독일의 분열 역시 주변 국가인 프랑스나 러시아의 팽창을 낳았다. 러시아 역시 유럽에게는 위협이면서도, 세력균형을 위한 한 축으로 작용했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히틀러의 독일을 제압해 유럽의 세력균형을 맞춰줬으면서도, 그 숙명적인 팽창주의로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상수다.

유럽연합(EU)은 이런 독일 딜레마와 러시아 수수께끼에 대한 해법이었다. 독일을 제어하고 부흥시키면서도, 냉전시절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유럽의 자국책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유럽연합이 유로화를 도입하며 통합을 강화한 결과,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의 위상은 파트너인 프랑스를 제치고 압도적으로 커졌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독일딜레마와 러시아 수수께끼를 더욱 복잡하게 할 전망이다.

영국의 탈퇴로 유럽 대륙 국가만의 유럽연합 강화로 가든, 아니면 유럽연합이 분열의 길을 가든 독일의 위상과 역할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미 그리스 부채위기 수습 과정은 독일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나, 독일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도 촉발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역시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을 촉발하며 포스트냉전의 상징인 러시아 국경선을 변경시켰다. 러시아는 이를 유럽연합과 나토의 확장에 맞서는 자구책이라고 주장하나, 서방은 러시아의 부활한 팽창주의로 받아들인다. 미국의 외교전략가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크렘린이 유럽연합을 약화시키려고 브렉시트를 환영하고 유럽 국가들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려 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필립 하몬드 영국 외무장관은 “우리가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을 좋아할 유일한 나라는 러시아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독일은 우크라이나 내전과 관련한 러시아 제재에서 미국의 압박을 막아주며 러시아와 타협적 자세를 보인바 있다. 독일은 러시아 문제에서 미국과 영국과는 다른 재량권을 가지려 할 것은 분명하다.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 5대 열강의 위험스런 세력균형 게임이 펼쳐지다, 결국 두 차례 세계대전이란 파국을 맞았다. 유럽통합의 약화는 유럽에 다시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라는 4대 열강의 위험스런 세력균형 게임을 야기할 전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회귀 정책을 펼치는 미국에게 대서양 양안동맹은 여전히 세계 패권의 중심축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유럽의 분열일뿐만 아니라, 미국에게는 유럽에 개입하는 중요한 수단을 상실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시 영국은 미국과 무역협정을 재체결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영국의 잔류를 촉구한 배경이다.

중동에서는 이슬람국가 등으로 기존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크림반도 합병 등으로 옛 사회주의권에 새롭게 그어진 국경선도 무력화되고, 아시아에서는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이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영국이 던진 주사위는 미국 패권의 중심축인 대서양 양안동맹의 질서를 흐트리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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