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루 앞둔 22일 밤, 폴란드 바르샤바 한복판에 옛소련이 지어준 문화과학궁전 건물에 초대형 영국 국기가 조명을 받고 있다. 바르샤바/EPA 연합뉴스
방관, 당혹감, 그리고 대혼란….
영국이 23일(현지시각) 실시한 ‘유럽연합 잔류 여부’ 국민투표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이들이 영국 유권자들만은 아니다. 유럽연합도 손에 땀을 쥐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지난 2월 투표일을 공표할 때만 해도 당연히 ‘잔류’로 결론지어질 것으로 예상해 유럽연합에 브렉시트 투표는 ‘강건너 불’이었다. 그러나 투표 캠페인에서 ‘잔류’와 ‘탈퇴’가 팽팽히 맞서면서 영국의 투표가 어느새 유럽연합에 ‘발등의 불’이 됐다.
<가디언>은 22일 “유럽연합이 영국 분위기를 잘못 판단했다”며 “처음엔 브렉시트 투표를 느긋하게 부인했으나, 차츰 공포감에 휩싸였고, 지금은 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향후 대응책 마련에 허둥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초만 해도 유럽연합은 그리스 재정위기, 러시아 무력 시위, 파리 테러, 난민 문제 등 시급한 현안들에 치이고 있었다. 브렉시트 투표는 ‘지겹고 불필요한 가욋일’로 여겼다. 여기에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은 자해행위이므로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지난 2월 ‘브렉시트’ 사태를 막기 위해 영국의 ‘회원국 특별 지위’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짜증 섞인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그 뒤 몇달 동안 유럽연합은 침묵했다. 그런데 브렉시트 가능성 우려가 점점 커지면서 유럽연합보다 각국에서 더 몸이 달았다. 지난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 공동의 집인 유럽을 지키지 못하면 역사의 폭풍우에 노출된다”고 경고했다. 이달 초에는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영국이 탈퇴한 뒤에는 (유럽연합이라는) 단일시장 접근권도 잃게 될 것”이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반면, 지난주 독일·프랑스 등 몇몇 나라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나가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브렉시트 투표로 불거진 갈등과 위기감은 유럽연합의 견고함과 유럽통합의 가치에 대한 회의감을 더욱 키웠다. 러시아 접경국인 에스토니아의 토마스 헨드리크 일베스 대통령은 지난달 “지난 20년간 유럽의 미래에 조금도 낙관을 잃어본 적이 없었는데,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에 재합류한 동유럽 국가들은 갑자기 주변 세계가 해체되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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