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오른쪽) 영국 총리와 사디크 칸(왼쪽) 런던 시장이 지난달 30일 런던에서 ‘유럽 안에서 더 강해지는 영국’이라는 이름의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오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는 이를 추진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정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당 정부는 유럽연합 내에서 영국의 협상력을 높이고 국내의 반유럽연합 세력들을 잠재우려고 이번 국민투표를 추진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잔류 쪽으로 결론나리라는 예상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6월 들어서는 탈퇴 여론이 우세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난해 9월 이후 브렉시트 여론조사들의 추이를 종합해 매일 발표하는 분석에 따르면, 6월 들어서 탈퇴 여론이 줄곧 우세를 보이고 있다. 16일 기준으로 잔류 44% 대 탈퇴 47%이다.
영국 국민들이 탈퇴를 선택한다면, 이는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포스트냉전 시대 지정질서의 큰 파고이다. 중동의 이슬람국가(IS),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과 함께 흐트러지는 국제질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추가될 것이다. 이슬람국가는 이슬람주의의 확산과 중동에서 기존 국가 체제의 해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은 러시아의 팽창과 유럽에서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질서의 혼란,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대결은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을 의미한다.
브렉시트는 가깝게는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멀게는 2차대전 이후 유럽이 추구해온 질서와 생존책의 심각한 타격을 의미한다. 2차대전 뒤 유럽은 멀게는 1600년대의 30년 전쟁 이후 300년 동안의 유혈분쟁을, 가깝게는 20세기 이후 두차례 세계대전의 참화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유럽통합을 선택했다. 이는 또 2차대전 뒤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특히 소련의 위협 앞에서 취한 자구책이었다.
소련의 붕괴와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유럽통합은 더욱 탄력을 받아서 공동통화 유로를 도입하고 정치적 통합까지 모색하는 단계로 갔다. 여기에는 독일 견제라는 프랑스의 의도도 있었다. 독일 통일 이후 갈수록 커지는 독일의 위상과 국력을 견제하는 길은 유럽통합의 진전이라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판단했다. 공동통화 유로의 도입이 독일의 경제력을 견제할 수단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독일은 유로와 유럽 공동시장으로 더 막강한 위상과 경제력을 확보하게 됐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럽 대륙의 문제에 대해 ‘명예로운 고립’ 노선을 취해왔다. 유럽 대륙을 장악하는 패권국가가 출현할 위기의 경우에만 개입하며 최후의 세력조정자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영국은 유럽통합에 주춤거리다 1973년에야 합세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자국 파운드화를 유지하는 등 유럽 대륙 국가들에 비해서는 유럽통합에 거리를 둔다. 영국이 비록 과거와 같이 유럽 최고의 국력을 가진 나라는 아니나, 유럽연합 탈퇴는 유럽연합 내의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이미 그리스 부채 위기 등으로 통합 회의론이 커지는 상황인데다, 독일의 압도적인 위상은 커지고 있다. 영국의 탈퇴는 유럽통합 자체의 붕괴나 유럽연합의 독일 의존을 낳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라도,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팽창은 불가피하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패권의 주축인 대서양 양안동맹의 약화를 의미한다. 중국의 도전과 러시아의 불안정한 재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에는 안방 질서가 흔들리는 것이다.
영국 역시 흔들린다. 독립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는 유럽연합 잔류 의견이 우세하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스코틀랜드는 유럽연합 가입을 이유로 독립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다. 영국연방의 구성원인 북아일랜드와 웨일스의 원심력도 불가피하다. 영국은 ‘그레이트 브리튼’이 아니라 ‘리틀 잉글랜드’로 축소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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