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를 주장해오던 영국 노동당 조 콕스 여성 하원의원이 총격과 흉기 공격을 받은 요크셔 버스톨 사건 현장에서 16일(현지시각) 과학수사 요원이 콕스 의원이 신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성구두를 살펴보고 있다. 땅바닥에 다른 유류품들의 모습도 보인다. 버스톨/AP 연합뉴스
16일 영국 웨스트요크셔주의 소도시 브리톨의 거리 한복판에서 백주대낮에 발생한 하원 의원 살인 사건은 온나라를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다. 이번 사건은 영국의 유럽연합(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1주일 남겨둔 시점에 일어났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에 앞장서오다 변을 당한 조 콕스(41) 의원에 대한 애도와 ‘증오 범죄’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최근 몇달째 영국 사회를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던 중요 현안은 순식간에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찬반 진영은 19일까지 일체의 투표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이 오는 23일 예정된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브렉시트’ 찬성론 쪽엔 상당한 역풍이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범인 토마스 메어(52)는 범행 당시 “풋 브리튼 퍼스트(영국을 우선시하라)!”라고 외쳤다고 <비비시>(BBC) 등 영국 언론들이 목격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브리튼 퍼스트’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론을 이끌어왔던 극우 성향 소수 정당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정당의 제이더 프랜센 부대표는 “이런 행위는 우리 당이 절대 묵과하지 않는 행동”이며 “우리 당과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 정치권과 언론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브렉시트 찬반 투표에서 어느 한쪽 진영의 유·불리를 예측하는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비비시> 방송은 16일 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다룰 예정이었던 정치해설 프로그램 ‘퀘스천 타임’과 ‘디스 위크’의 방영을 취소했다. 여론조사 기관 비엠지(BMG)는 브렉시트에 대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연기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브렉시트 영향’ 보고서 발표를 미뤘다.
한편, 경찰은 범인이 극우단체와 연계돼 있는지와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범행 동기를 수사하고 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범인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극단주의 성향의 인터넷 웹사이트 한 곳에서 범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의 이웃 주민들은 “조용한 사람이었다”며 “우리가 평소 알던 그와 전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이날 범행 직전 메어가 집을 나서는 것을 목격한 한 여성은 당시 모습에 대해 “지극히 침착하고 정상적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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