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졸업한 노동자 가정 출신
10여년간 빈민 구호활동가 일해
의원 당선 뒤 난민 보호 앞장서
“난민 문제 고민 대처 위해서도
유럽연합 잔류를” 마지막 기고
16일(현지시각) 웨스트요크셔주 버스톨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진 영국 노동당 하원 의원 조 콕스(41)의 생전 모습.EPA 연합뉴스
지난 10일, 자신의 지역구인 웨스트요크셔주의 지역 언론 <요크셔 포스트>에 공개한 기고문은 그가 생전에 작성한 마지막 기고문이 됐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난민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라는 제목에 글에서 그는 “난민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것만이 난민이라는 큰 어려움을 마주한 영국을 돕는 길”이라며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16일 오후, 괴한의 총격을 받고 안타깝게 숨을 거둔 조 콕스(41) 영국 노동당 하원 의원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2015년 영국 총선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 콕스는 십여년 간 빈민구호활동가로 살아온 이력과, 가족 구성원 중 자신만이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노동자 가정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각) 콕스의 부고 기사에서 “그는 영국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했고, 의원이 되기까지 자신의 삶에 헌신했다”며 영국 정치 신예로 주목받았던 콕스를 추모했다.
조 콕스는 1974년 영국 북부의 웨스트요크셔주의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지역의 소규모 치약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도와 방학 때마다 치약 포장을 도왔다는 콕스는 1995년 영국의 명문 대학인 케임브리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직후 존 왈리 노동당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험을 쌓은 콕스는 2002년부터 빈민구호단체인 옥스팜에서 구호활동가로 일하게 되는데, 콕스는 이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2015년 총선에서 당선된 뒤 <요크셔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자신의 비극에 무관심한 정부와 국제 사회에 이미 지쳐버린 아프가니스탄의 노인들과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만약 정부가 시민들이 처한 문제를 무시한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사실이 바로 내가 구호활동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3월21일 영국 하원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 콕스 상원의원을 찍은 동영상 갈무리.런던/AFP 연합뉴스
이후에도 세이브더칠드런, 아동학대방지국가협회(NSPCC) 등에서 활동하며 아동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콕스는 2015년 자신의 고향인 웨스트요크셔주의 베틀리·스펜 선거구에 출마해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며 영국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콕스는 당선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원 내에서 ‘시리아의 친구들’이라는 초당적 의원 모임을 주도하며 시리아 내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영국 정부를 비판했다. 올해 초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난민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없다면, 유럽 해안가에는 구명 조끼만이 계속 쌓일 것”이라며 난민 위기 해결을 위한 유럽 사회의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콕스는 오는 23일로 예정되어 있는 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앞두고 영국의 유럽 잔류를 지지하는 캠페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숨지기 하루 전인 15일에도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유럽연합 잔류 찬성을 의미하는 문구인 ‘IN’이 쓰인 깃발을 들고 런던 템즈 강 위에서 보트를 타며 찬성 캠페인을 벌였다.
16일 저녁 영국 런던의 의회 광장에 마련된 조 콕스(41) 의원의 추모 공간에 한 시민이 꽃을 놓으며 추모하고 있다.런던/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