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주요 회원국 국가부채율/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인구 전망
“긴축 도 넘었다” 시위 물결…낮은 성장률에 내년 더 불안
“연금이 아니라 실업이 문제” 복지후퇴 넘어선 대안 논의도
“연금이 아니라 실업이 문제” 복지후퇴 넘어선 대안 논의도
[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① 스마트 혁명, 삶의 혁명 ☞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③ 유럽 연금 시위, 미래의 불안 “노동권이 탄압받고 있다. 모든 그리스인이 일어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투쟁이다.”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시위행렬에 있던 50대 여성 변호사는 이렇게 외쳤다. 이날 그리스 양대 노조연맹의 총파업으로 항공 운항과 대중교통이 마비됐고 학교와 은행,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그리스 의회가 전날 공기업 임금 삭감, 노조의 임단협 제약을 뼈대로 한 긴축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자, 격분한 시민들은 “우리를 노예로 살게 하지 말라”며 재무부 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 지난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총파업 시위에 참가한 50대 시민은 <에이피>(AP) 통신에 “사람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맞서 자기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비 인상 반대 시위에 참가한 영국의 대학생은 “교육은 부잣집 아이들의 게임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는 지난 10월부터 한달간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온 나라가 마비됐고, 영국과 이탈리아는 정부의 교육보조금 삭감과 학비 인상에 대한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12월. 유럽은 어느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심각한 재정위기와 초긴축정책 때문이다. 거리엔 캐럴 대신 격렬한 구호가, 쇼핑객 대신 성난 시위대가 출렁인다.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덴마크, 체코…. 시위의 물결은 직업과 계층,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자부심은 망가지고, 팍팍한 생활에 대한 분노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다. 긴축재정은 필연적으로 복지의 대폭 축소와 극심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예고한다. 더 큰 문제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란 희망마저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11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유럽은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수준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조차 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최근 “위기는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스태그네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이 이른바 ‘과잉 복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는 그간 쌓여온 사회경제적 불균형의 압력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부의 정책 실패, 금융위기에 쏟아부은 공적자금.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일반화된 감세와 고용 불안정, 금융자본의 거품, 도덕적 해이 등 수많은 원인들이 깔려있다.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률 저하에 따른 인구 고령화도 큰 부담이다. 현재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65살 이상 인구는 19.1%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그러나 이미 지난 2008년 인구전망 보고서에서, 이 비율이 2035년에 25.4%, 2060년에는 30.0%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나머지를 먹여살리는 부양의존도가 2008년 25.4%에서 2060녀엔 53.5%에 이를 전망이다. 이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경제선진국뿐 아니라 신흥산업국들에게도 곧 다가올 미래이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 몇십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얼슨은 “혜택의 시대가 저물고, 긴축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긴축이 경제와 정치를 바꿔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는 ‘재정긴축’과 ‘경기부양’이라는 상반된 정책이 동시에 필요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유럽은 ‘긴축’, 미국은 ‘부양’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럽에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긴축을 주도한 빅3의 우파정부가 야당과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공화당의 ‘부자 감세안’까지 수용했다가 안집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샀다. 경제 위기가 리더십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흔들리는 유럽식 복지시스템의 미래는 무엇일까?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정치분석가 도미니크 무아시는 지난 7월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에 “유럽 복지시스템이 유럽 정체성의 중요 요소이고, 적어도 사회적·인간적 측면에서 상당한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것 같은 경제위기국면에서 유럽인을 보호해주는 완충지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은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 지출을 하면서도 선진국 중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기존 유럽 복지시스템의 강점을 강조한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는, 파이를 먼저 키우면 그 부가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럽 복지시스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의 대안경제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의 필리프 프레모 논설위원과 티에리 페슈 편집국장은 “프랑스식 사회보장 모델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낸 분야는 퇴직연금이 아니라 고용과 실업”이라며 복지 모델의 적극적 전환을 제안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월간 <이코노미 인사이트>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복지국가는 실업 발생 뒤 대체소득을 제공하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사전에 개인의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며 “이때 복지비용은 미래의 실업급여를 절약하는 방편이자, 일종의 사회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유럽은 지금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신념 체계가 충돌하는 한 가운데에서, 기존 복지국가 체제와 영미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① 스마트 혁명, 삶의 혁명 ☞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③ 유럽 연금 시위, 미래의 불안 “노동권이 탄압받고 있다. 모든 그리스인이 일어서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투쟁이다.”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그리스 아테네 도심의 시위행렬에 있던 50대 여성 변호사는 이렇게 외쳤다. 이날 그리스 양대 노조연맹의 총파업으로 항공 운항과 대중교통이 마비됐고 학교와 은행,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그리스 의회가 전날 공기업 임금 삭감, 노조의 임단협 제약을 뼈대로 한 긴축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자, 격분한 시민들은 “우리를 노예로 살게 하지 말라”며 재무부 건물에 화염병을 던졌다. # 지난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총파업 시위에 참가한 50대 시민은 <에이피>(AP) 통신에 “사람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맞서 자기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학비 인상 반대 시위에 참가한 영국의 대학생은 “교육은 부잣집 아이들의 게임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는 지난 10월부터 한달간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온 나라가 마비됐고, 영국과 이탈리아는 정부의 교육보조금 삭감과 학비 인상에 대한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0년 12월. 유럽은 어느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심각한 재정위기와 초긴축정책 때문이다. 거리엔 캐럴 대신 격렬한 구호가, 쇼핑객 대신 성난 시위대가 출렁인다.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덴마크, 체코…. 시위의 물결은 직업과 계층,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자부심은 망가지고, 팍팍한 생활에 대한 분노와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다. 긴축재정은 필연적으로 복지의 대폭 축소와 극심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예고한다. 더 큰 문제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란 희망마저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11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 유럽은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수준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정치인들조차 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최근 “위기는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스태그네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이 이른바 ‘과잉 복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은 2010년 유럽 재정위기는 그간 쌓여온 사회경제적 불균형의 압력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부의 정책 실패, 금융위기에 쏟아부은 공적자금.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일반화된 감세와 고용 불안정, 금융자본의 거품, 도덕적 해이 등 수많은 원인들이 깔려있다.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률 저하에 따른 인구 고령화도 큰 부담이다. 현재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65살 이상 인구는 19.1%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그러나 이미 지난 2008년 인구전망 보고서에서, 이 비율이 2035년에 25.4%, 2060년에는 30.0%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나머지를 먹여살리는 부양의존도가 2008년 25.4%에서 2060녀엔 53.5%에 이를 전망이다. 이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경제선진국뿐 아니라 신흥산업국들에게도 곧 다가올 미래이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 몇십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얼슨은 “혜택의 시대가 저물고, 긴축의 시대가 돌아왔다”며 “긴축이 경제와 정치를 바꿔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는 ‘재정긴축’과 ‘경기부양’이라는 상반된 정책이 동시에 필요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유럽은 ‘긴축’, 미국은 ‘부양’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럽에선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긴축을 주도한 빅3의 우파정부가 야당과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공화당의 ‘부자 감세안’까지 수용했다가 안집인 민주당 내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샀다. 경제 위기가 리더십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흔들리는 유럽식 복지시스템의 미래는 무엇일까?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정치분석가 도미니크 무아시는 지난 7월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에 “유럽 복지시스템이 유럽 정체성의 중요 요소이고, 적어도 사회적·인간적 측면에서 상당한 비교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것 같은 경제위기국면에서 유럽인을 보호해주는 완충지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은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 지출을 하면서도 선진국 중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며 기존 유럽 복지시스템의 강점을 강조한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는, 파이를 먼저 키우면 그 부가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유럽 복지시스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의 대안경제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의 필리프 프레모 논설위원과 티에리 페슈 편집국장은 “프랑스식 사회보장 모델의 실패를 여실히 드러낸 분야는 퇴직연금이 아니라 고용과 실업”이라며 복지 모델의 적극적 전환을 제안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월간 <이코노미 인사이트>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복지국가는 실업 발생 뒤 대체소득을 제공하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사전에 개인의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며 “이때 복지비용은 미래의 실업급여를 절약하는 방편이자, 일종의 사회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유럽은 지금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신념 체계가 충돌하는 한 가운데에서, 기존 복지국가 체제와 영미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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