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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힘 과시 중국, 패권경쟁 ‘무한도전’

등록 2010-12-23 08:17

센카쿠사태 등서 ‘힘의 외교’ 펼치며 자국 이익 고집
‘아태 안보 결정권’ 쥔 미국과 충돌·공존 전망 갈려
[2010년이 던진 21세기 화두 5] ② 중국 굴기, 헤게모니의 혼란

# 7월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아세안 (ASEAN) 회원국들 앞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올들어 중국이 ‘남중국해는 중국의 핵심이익 사안’이라고 주장한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아세안 국가들도 난사군도(스프래틀리군도)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강압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성토했다. 당시 분노한 양제츠 장관은 “당신들의 경제적 번영이 얼마나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 9월7일 중국 남서부 푸젠성에서 출발한 어선 민진위 5179호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해상에서 일본 해경 순시선에 붙잡혔다. 일본은 이 어선이 일본 영해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다 이를 적발한 순시선을 들이받고 도주하려 했다며, 선장 잔치슝을 일본 국내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일본과의 고위급 대화를 전면 단절하고,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중단했으며, 군사시설에 무단침입한 혐의로 일본인 4명을 구속하며 강력하게 대응했다. 9월24일 일본은 잔치슝의 석방을 발표해 ‘항복’했다.

올 한해 ‘중국 굴기(중국이 강대국으로 일어서다)’의 강력한 지각변동이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올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의 ‘힘의 외교’ 파장을 가장 강하게 감지했고,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위협론’이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미국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러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월24일 뉴욕에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과 만나 “미국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이를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으로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사건들은 ‘쇠퇴하는 제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의 경쟁이 21세기 전반부 수십년 동안 세계를 뒤흔들 것임을 예고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이달초 중국의 부상을 춘추시대 말기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에 비유했다. 숙적인 오왕 부차에게 포로로 붙잡힌 구천은 굴욕을 견디고 와신상담하며 몰래 실력을 쌓는다. 부차가 초심을 잃고 흥청망청하는 틈을 타 복수에 나서 결국은 부차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코노미스트>는 1978년 이후 30년 동안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를 외교원칙으로 삼아 항상 평화를 얘기하며 경제성장에 힘을 집중해온 중국을 월왕 구천의 ‘와신상당’에 비유한다. 이제 중국은 힘을 길러 부상했다.그렇다면 부상한 중국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나설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이어질까?

일부에선 중국은 현재의 세계화와 무역구조에서 너무 큰 이익을 얻는 수혜자이기 때문에 이 질서에 도전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기존 서구 중심 국제기구에서 중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식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경제적 의존만으론 평화적 공존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밀접했던 영국과 독일도 결국 세계 1차대전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1970년대 초 중미 화해의 설계자였던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은 지난 9월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회의에서 “중국을 세계질서 안으로 끌어드리는 것은 1세기 전 독일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도 어렵다 ”며 “미국과 중국의 디엔에이(DNA)가 적대관계를 확대시키고 있으며, 양국 모두 동등하게 협력하는 경험이 많지 않다”고 경고했다.

미국 중심의 구질서는 흔들리고 있지만, 새로 일어서는 중국은 아직은 개발도상국임을 내세우며 국제사회에서 더 큰 책임을 맡지 않으려 하는 ‘국제질서의 아노미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핵과 이란핵, 기후변화 등 주요 이슈에서 지나치게 중국의 이익에만 집착한다고 비판한다. 반체제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싸고 중국 정부가 국제사회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중국식 질서’를 따를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진다. 한편, 경제적으로 쇠퇴한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이용해 ‘안보’ ‘군사력’으로 아시아 질서를 다시 주도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아시아의 경제는 중국에 깊숙히 의존하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아시아는 안보·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중요한 분열상태에 빠져 버렸다.

지난 10~11일 베이징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질서와 중미관계’ 국제포럼에서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현재 아시아·태평양지역 정세에서 (중국 중심의) 경제일체화와 (미국 중심의) 지정학적 정치가 서로 분리된 상태”라며 “중국이 경제적인 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안보문제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일’의 군사·안보 밀착은 중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주펑 베이징대 교수는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미국의 조지 워싱턴호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온 것은 중국의 경계감을 높였다”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정세에 큰 변화가 나타나려하고 있으며, 미-중은 평화와 안정을 확실히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는 “낡은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변하고 있다”며 “앞으로 아시아에서는 안보 등에서는 (미국식) 구질서가 유지될 것이고, 중미 양국 가운데 어느 한쪽이 붕괴하거나 아시아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서로 끊임없이 가격을 맞추고 거래하는 중미관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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