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독일, 라이프치히 민주화시위 현장
② 폴란드, 연대노조의 터전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③ 보스니아, 내전 상처 속 공존의 사라예보
④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처형 현장
⑤ 체코, 사라진 벨벳혁명의 프라하
② 폴란드, 연대노조의 터전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③ 보스니아, 내전 상처 속 공존의 사라예보
④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처형 현장
⑤ 체코, 사라진 벨벳혁명의 프라하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① 독일, 라이프치히 민주화시위 현장
베를린 곳곳 전시회…장벽기념관도 40만여명 방문
완전한 통합 멀어…“화합 안될 것 같다” 42% 대답
베를린 곳곳 전시회…장벽기념관도 40만여명 방문
완전한 통합 멀어…“화합 안될 것 같다” 42% 대답
2009년 10월, 베를린은 꿈틀대고 있었다. 베를린장벽이 있던 자리엔 20년 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세계 각지에서 언론과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한때 동·서독을 갈라놓은 장벽의 관문이었던 ‘체크포인트 찰리’는 번화한 도심 상가에 둘러싸인 관광명소로 변모했다. 도로변 장벽박물관도 사람들로 붐빈다. 독일 정부는 다음달 9일 베를린장벽 붕괴 20돌에 맞춰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정상을 포함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5일 베를린 장벽이 있던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동서독 분단 시절 이 곳의 풍경을 찍은 사진과 자료들을 보고 있다. 전시대 뒷편이 옛 동독 지역이며, 전시대 맞은편 도로 건너에 장벽기념관이 있다.
베를린장벽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도 급증세다. 2007년 26만5000명, 2008년 30만5000명, 올해엔 10월 중순 현재 40만명에 이른다. 헝가리·체코 등 동유럽 젊은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왔다는 한 독일인 부부는 13살, 11살, 7살 자녀의 손을 잡고 장벽기념관을 찾았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베를린장벽의 의미를 가르쳐주기 위해 왔다”며 “아직 정확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깊은 인상이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눈빛도 사뭇 진지했다. 장벽기념재단의 만프레트 피셔 이사장은 대다수 방문객이 어떤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이곳을 찾았다가 현장을 보고 실망한다고 말했다. “‘아니 장벽이랄 것도 없잖아, 이렇게 작은 것이 우리를 가르고 있었던 거야?’라고 합니다. 장벽은 높았던 게 아니라 깊었던 것이지요.” 장벽기념관은 가이드 투어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후대에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바로 여기에 파괴된 삶과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1961과 1989라는 두 개의 숫자를 가르칩니다.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해인 1961은 ‘과거를 잊지 말자’,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요.” 그러나 상처의 온전한 치유와 통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달 독일 여론조사기관인 이포스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통일이 옳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9%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통일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됐느냐”는 물음엔 35%만 그렇다고 했다. 독일 일간 <디벨트>가 지난 20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선 “동·서독 양 지역이 앞으로 잘 화합할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낙관이 58%로 많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비관도 42%나 됐다. 정녕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 걸까?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0년 전 동독 시민들이 해냈다면, 지금 우리도 할 수 있지요.” 만프레트 피셔 장벽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베를린/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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