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자유”“변화” 외쳤던 곳 신나치즘 시위로 몸살

등록 2009-10-28 07:38수정 2009-10-28 08:12

지난 17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네오나치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진보적 사회단체와 정당 소속 활동가와 시민들이 네오나치즘에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7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네오나치주의자들이 시위를 벌이자, 진보적 사회단체와 정당 소속 활동가와 시민들이 네오나치즘에 반대하는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① 독일, 라이프치히 민주화시위 현장
이민자 혐오 네오나치 반파시즘 단체와 대립
지난 17일 낮 독일 라이프치히. 도시 전체에 을씨년스런 긴장감이 감돌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다 사흘째 비가 내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엔 경찰 헬리콥터가 맴돌았고, 거리 곳곳엔 헬멧을 쓴 경찰들이 깔렸다. 뮌헨과 드레스덴 등 인근 지역 번호판을 단 경찰차들까지 떼지어 사이렌을 울리며 어디론가 내달았다. 독일 전국에서 모인 네오나치주의자들의 시위였다. 여기에 네오나치즘에 반대하는 독일 전역 진보단체들의 동시 맞불집회로 충돌이 우려됐다.

라이프치히는 꼭 20년 전 가을 옛 동독 시절, 니콜라이 교회의 월요기도회를 중심으로 “자유” “변화” “우리가 인민이다”를 외쳤던 ‘민주와 저항의 도시’다. 이곳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는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인접 공산권의 도미노 붕괴로 이어지면서, 냉전 체제와 이념대립 시대의 종막을 알렸다. 라이프치히는 괴테와 마르크스, 바흐와 멘델스존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곳에서 지금은 네오나치즘과 반파시즘이 부닥친다. 20년 전 독일인들은 ‘자유’만 쟁취하면 통합은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적·문화적 이질성과 경제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미완의 통합’은 외국인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네오나치를 낳았다.

트램(노면전차)을 타고 시위 장소로 향했다. 경찰과 시민들이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라이프치히 중심 아우구스투스 광장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아이젠반 거리에 이르자 트램이 운행 노선을 바꾸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거리엔 수천명의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 앞에 막혀 있었다.

각종 깃발과 커다란 인형들, 시위 차량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남미풍의 음악과 참가자들의 ’와~’ 하는 함성이 어지럽게 뒤섞였다. 체 게바라의 초상이 그려진 깃발과 히틀러 망령 부활 금지를 풍자한 깃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보단체 시위대였다. 참가자들은 인터넷 검열 철폐를 주창하는 해적당, 환경운동 단체, 사회민주주의자, 좌파 운동가들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음악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즐겁게 시위를 했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한 이주노동자는 기자에게 서투른 영어로 뭔가 이야기하려 애썼다. 다양한 그룹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반나치즘, 반파시즘 연대감이었다.

지역 라디오 방송은 시위 상황을 생중계했다. 대담에 나선 정치분석가는 네오나치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길가 건물들의 벽엔 “파시스트가 발붙일 곳은 없다” “나치주의자들은 엿먹어라” 따위의 구호가 적힌 낙서와 포스터들이 나붙었다. 나란히 선 가로수들엔 검정, 하양, 노랑, 회색의 삼각깃발들을 매단 줄이 걸렸다. 다양한 피부색의 인종이 어우러진 세계를 상징했다.


경찰 저지선 저편에는 네오나치 시위대가 있었다. 이들의 시위 계획은 이미 라이프치히를 며칠 전부터 긴장시켜 왔다. 드레스덴 등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는 있었지만, ‘자유와 연대’의 상징인 라이프치히에서의 네오나치 시위는 3년 만이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후드점퍼를 입은 네오나치 정당인 독일국가민주당(NPD) 청년조직의 시위는 애초 예상됐던 600명의 2배인 1200명으로 순식간에 불어났다.

흩뿌리는 빗방울에 아랑곳없이 열기가 고조되던 오후 5시께,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네오나치 해산에 나섰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왔다는 한스 슈나이더(25)는 “네오나치는 배타적 인종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라이프치히 정신은 자유와 연대다. 오늘 우리가 나치를 굴복시켰다”며 “정말 대단하다!”를 연발했다.

신기하게도, 시위가 끝날 즈음 빗방울이 그치면서 경찰 저지선 너머 먼 하늘에 옅은 무지개가 섰다. 라이프치히는, 아니 독일 사회는 아직 가시지 않은 통일 후유증과 일부 극단주의 움직임 속에서도 성숙한 통합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라이프치히/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