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제공/EPA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1시간에 걸쳐 통화했다. 이 회담에서 ‘평화의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중국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26일(현지시각) 이뤄진 중국과 우크라이나 정상 통화는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통화가 처음 예고된 것은 지난달 13일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그다음 주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지난달 20~22일)한 뒤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달 넘게 통화는 이뤄지지 않다가 이날 사전 예고 없이 통화 사실이 공개됐다.
내용은 더 파격적이었다. 회담에 임한 두 정상의 생각은 이날 밤 나온 중국 외교부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발표문을 읽으면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 중국 발표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시 주석이 “중국이 책임 있는 대국”으로 이번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으며, 기름을 부을 수도 없고, 기회를 활용해 이익을 취할 수도 없다”고 한 부분이다. 이번 전쟁에 임하는 미국의 ‘비겁하고 이기적인’ 태도를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시 주석은 이어 자신들의 입장은 “(미국과 달리) 공명정대”하고, “대화와 담판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유일한 출로”라고 본다며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결심을 밝혔다. 이를 위한 구체 수단으로 중국 정부의 유라시아업무 특별대표를 우크라이나에 파견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이 대표가 “우크라이나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각 당사자들과 깊이 있는 소통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10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중재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도 미국을 대신하는 ‘공정한 중재자’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구절은 “우크라이나에 정의롭고(just) 지속가능한(sustainable)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정의로운 평화’는 2014년 3월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를 포함해 1991년 12월 소련에서 독립했을 당시의 모든 영토를 되찾는 것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을 통해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세계 2위 강대국인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전쟁에서 러시아 지원을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중국의 인도적 지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공정성을 전면에 내세운 시 주석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에 인도 지원을 하면서 다른 쪽에선 러시아에 군사 지원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이번 회담은 미국에 맞서 공정한 ‘중재자’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중국과 중-러 밀착을 견제하려는 우크라이나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영토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 요구’를 접지 않고 있어 중국의 중재가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통화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외교적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키이우에 기반을 둔 정치 분석가 미콜라 다비디우크는 이 신문에 “우크라이나에 주요한 메시지는 중국이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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