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각)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있는 자유광장 풍경. 광장에 있는 건물 벽면에 우크라이나 국기와 에스토니아 국기가 함께 걸려 있다. 탈린/노지원 특파원
1년 전인 2022년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한겨레>는 이 전쟁으로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된 안보 태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유럽 나라들을 찾아 이들의 변화를 세차례에 나눠 살펴본다.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인 핀란드와 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결정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소국인 발트 3국에는 서방의 군대가 전진 배치됐다. 미국과 나토의 안보 우산 아래 숨었던 독일은 “시대 전환”을 공표하며 전후 70여년 동안 자제했던 ‘군사력 강화’라는 새 길을 걷기로 했다. 2화에선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발트 3국의 상황을 소개한다. 편집자
<우크라이나 전쟁, 유럽을 뒤바꾸다>
1회 북유럽, 중립 노선을 포기하다(핀란드)
2회 발트 3국, 위협 앞에 각성하다(에스토니아)
3회 70여년 잠자던 대국, ‘시대전환’을 선택하다(독일)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자유광장에 들어서면, ‘독립전쟁 승리의 기둥’이라는 기념물과 마주하게 된다. 이 광장의 한쪽 건물 벽면엔 커다란 우크라이나와 에스토니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늘을 상징하는 우크라이나 국기의 파란색과 같은 하늘을 상징하는 에스토니아 국기의 조금 옅은 파란색이 하나로 이어진 것 같았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두 나라가 ‘러시아’라는 공통된 안보 위협 앞에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듯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둔 13일(현지시각) 방문한 탈린 시내에선 이렇게 두 나라 국기를 함께 걸어놓은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17일(현지시각)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맨 왼쪽부터),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 에길스 레비츠 라트비아 대통령,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에스토니아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5분의 1, 인구는 한국의 37분의 1인 133만명에 불과하다. 이 작은 나라는 러시아와 300㎞에 이르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지난 1년 동안 변화를 묻는 말에 시민 에거트(34)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전쟁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과거에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침공했다는 것은 역사책을 읽고 알고 있었죠. 에스토니아에는 러시아인도 많이 살고 있는데….”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작한 전쟁이긴 하지만, 이제 솔직히 러시아가 다르게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시계를 무려 105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200년 가까이 러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던 에스토니아는 ‘붉은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괴되는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1918년 2월24일이었다. 그해 11월 소련의 침공을 막아내고, 1920년 2월 평화조약을 맺으며 독립국의 지위를 지켜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8월 다시 소련에 편입되는 아픔을 맛봐야 했다. 이후 소련이 붕괴 조짐을 보이던 1991년 8월 재빨리 독립을 선언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누리는 평화를 쟁취한 것은 불과 32년 전, 광장의 독립전쟁 기념비가 완공된 것은 2009년으로 겨우 14년 전이다.
러시아라는 ‘지정학적 숙명’과 공존해야 한다는 동병상련의 아픔 때문인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 나라의 지원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에스토니아는 지난해 11월 말까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부터 곡사포·박격포·탄약 등 3억3천만유로(약 4272억원)에 이르는 군사지원을 했다. 카이모 쿠스크 주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대사는 지난달 23일 에스토니아가 155㎜ 곡사포 등이 포함된 ‘역대 최고급’ 군사원조 패키지 지원을 추가 결정한 데 대해 “다른 나라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위한 무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변명’을 할 수 없도록 선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의회는 지난해 4월21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저지른 전쟁범죄를 ‘대학살’로 규정했다.
독일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의 집계를 보면, 에스토니아는 지난해 1월24일부터 11월20일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이 비율은 세계 주요 40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 뒤를 잇는 것이 같은 안보 환경 아래 놓여 있는 라트비아(0.9%)·폴란드(0.5%)·리투아니아(0.5%) 등이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와 함께 에스토니아 국방부는 2023년 국방예산을 전년보다 무려 42%나 늘리기로 했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지출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목표인 2%를 넘어 올해 2.8%, 2024년엔 3.2%에 도달할 예정이다. 최근엔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6대 추가 주문했다.
나토 역시 동맹의 ‘최전선’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에 대한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합병한 뒤인 2016년 다국적 전투군을 배치하는 ‘강화된 전진 배치’(EFP) 개념을 발트 3국과 폴란드에 적용했다. 2017년부터는 나토 동맹국인 영국이 이끄는 전투부대가 순환 배치 중이다. 이 전투부대는 영국의 주력 전차인 챌린저2와 보병 장갑차인 워리어를 갖추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의 침공 뒤 나토에 이 부대의 영구 배치를 요구 중이다.
이웃 리투아니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리투아니아는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형제국임을 내세우는 벨라루스(679㎞), 서쪽으로는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297㎞)와 총 976㎞에 이르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6월 이곳에 여단 1개를 배치하기로 결정해 9월 첫 분대가 도착했다. 미국도 지난해 10월 2026년 초까지 부대를 순환 근무시키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전쟁 직후인 2022년 3월 그해 국방예산을 3억유로 더 늘리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또 5억유로를 들여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 8대와 이를 통해 발사할 수 있는 사거리 300㎞의 단거리 미사일인 육군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 등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로써 2030년까지 끌어올리려던 2.5% 국방비 지출 목표를 앞당겨 달성했다. 2015년 시작한 18~23살 남성에 대한 부분적 징집을 확대하는 안을 논의 중이다. 바이도타스 우르벨리스 리투아니아 국방정책국장은 <한겨레>에 “러시아는 역사적 관련이 있거나 인접한 나라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며 “도전 과제를 이해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라트비아 역시 안보 대비태세 강화에 힘쓰는 중이다. 라트비아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2.2% 수준이었던 국방예산을 3년에 걸쳐 2.5%까지 올리기로 했다. 하이마스 6대를 사기로 했다. 라트비아에서는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친러 정당의 지지율이 5%를 넘기지 못했다. 그에 반해 1991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친유럽 정당의 지지율은 3배나 올라 의석수가 8석에서 24석으로 늘었다.
13일(현지시각)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국방부 건물 전경. 유럽연합(맨 왼쪽), 에스토니아, 나토 깃발이 펄럭이고, 입구에는 에스토니아기와 우크라이나기가 함께 게양돼 있다. 탈린/노지원 특파원
발트 3국과 영국·폴란드는 지난달 19일 탈린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주력 전차인 레오파르트2 지원을 망설이던 독일을 압박하는 움직임이었다. 세 나라 외교장관은 그달 21일 트위터에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고 우크라이나를 돕고, 유럽의 평화를 하루빨리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독일을 다시 압박했다. 독일은 나흘 뒤인 25일 결국 결단을 내렸다.
탈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