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독일대사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은 ‘에너지 위기’라는 먹구름 속에 갇혀 있다. 올해 말까지 탈원전 목표를 달성하겠다던
독일조차도 추운 겨울에 대비해 원자로 2기를 내년 4월까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5일 <한겨레>와 만난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는 핵 에너지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독일의 원전 폐쇄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원전 비중은 확대하고 재생에너지는 줄이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한국이 기후 위기에 책임을 다할 것임을 믿는다”고 했다. 라이펜슈툴 대사를 만나 유럽이 마주한 에너지 위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 독일의 군사비 증강 등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전쟁 이후 러시아가 독일 등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에너지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드스트림1·2 가스관에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사고에 ‘사보타주’(고의적인 파괴 행위) 징후가 있음을 분명히 언급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가 독일 등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줄이고 중단하길 반복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대한 독일의 해법은?
“근본적 대책은 재생에너지의 확대다.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현재 비중은 47∼48% 정도다. 현재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건설을 하고 있다. 이는 현재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교 구실을 하게 된다.”
―원전과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우리의 결심은 확고하다.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 3기가 있다. 애초 독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겨울을 안정적으로 나기 위해, 만일을 대비해 핵발전소 2기를 ‘예비전력원’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중요한 것은 ‘원전 폐쇄’라는 결정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독일 사회에는 원전의 위험성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게 형성돼 있다.”
―탈원전에 대한 공고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은 지난 50년 동안 핵폐기물을 아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과학계는 (핵폐기물을 어디에 보관해도) 100% 안전할 수는 없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를 통해) 핵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믿을 만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구름이 독일로 오는 상황을 직접 경험했다.”
―한국 정부는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은 물론 재생에너지 비중도 줄이고 있다.
“각 나라는 (자국의 사정에 따라) 각자의 에너지 믹스를 규정한다. 독일은 한국과 입장이 다르다.
한국이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아주 중요한 약속을 했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고,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을 2018년에 비해 40% 감축하겠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 경제 10위 안에 드는 경제 강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제 정치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세계적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도 이 역할에 들어간다. 기후 위기는 지구가 마주하는 도전 과제다. 독일은 윤 정부가 이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다.”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독일대사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에너지 위기로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는다. 그로 인해 러시아에 대항하는 국제적 공조를 유지하기 곤란하진 않나?
“독일 시민들이 반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말 확고하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독일 정부는 겨울 동안 시민들이 에너지 요금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앞서 언급한) 다른 여러 조치와 함께 에너지 요금 상한제를 실시한다.”
―‘9유로(한화 약 1만2000원) 티켓’, 곧 한 달 동안 독일 전국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정기권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티켓 판매는 끝났지만 비슷한 정책을 내놓을 계획인가.
“
9유로 티켓은 치솟는 에너지 요금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재정적 부담을 낮춰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경제 전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5000만장이 넘게 팔릴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독일의 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 차량 대신 대중교통을 타고 통근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은 9유로 티켓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제도를 더 오래 실시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 다만 ‘49유로 티켓’ 등 비슷한 종류의 제도를 이어나가기 위해 연방-지방 정부 간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여름, 한국에 역대 최고급 물난리가 나서 재산, 인명 피해를 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독일의 입장은 무엇인가.
“기후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개발도상국, 최빈국에서는 아주 큰 위협이 된다. 또한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재생에너지를 강화하자고 강조하는 이유다. 보다 강력한 재생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에 비해) 55%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독일은 자체적으로 이 목표를 65% 감축으로 설정했다. 유럽연합은 탄소 중립 목표 시점을 2050년으로 맞췄는데 독일은 이를 5년 앞당긴 2045년으로 정했다. 지구 온난화(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를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독일대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독일대사관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크라이나 전쟁이 7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은 국제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행위다.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 안보와 평화 질서에 대한 위협이다.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그들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난민 100만명 이상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달렸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절차를 밟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럽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정말 역사적인 장면이다. 독일은 아주 초반부터 이들 나라의 나토 합류를 지지했다. 두 나라는 상당한 기간 나토의 파트너로 긴밀히 협력해왔다. 이들이 나토가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가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두 나라의 합류로 동맹은 더 강화되고 유럽이 안정될 것이라고 본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나토는 우크라이나와 10년 이상 협력해왔다. 나토 가입은 해당 국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다만, 나토에 가입에는 여러 조건이 뒤따른다. 민주주의와 같은 기본적 가치를 추구하고, 부패가 없어야 하며, 동맹국들끼리 물자와 병력을 상호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이 최근 역내에서 앞으로 더 많은 군사적 역할을 떠맡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지난 6월 만든 1천억유로(약 140조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이 소진된 뒤에도 국방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말했듯 유럽 안보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안보에 가해진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여긴다. 이 전쟁은 우리가 (1975년에 맺은) 헬싱키 협정과 함께 지난 50년 동안 유지돼오던 안보 체계를 바꿨다. 효율적이고 잘 갖춰진 현대 (독일) 연방군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독일은 물론 유럽의 모든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특별방위기금을 조성해 속도감 있게 투자하고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나토의 요구를 만족시키게 된다. 국제 질서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 때문에라도 (국방력 강화는) 필요하다.”
―독일의 재무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사실 꽤 오랫동안 미국은 거듭 독일에 국방비 지출을 늘려달라고 해왔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하면 ‘독일의 지리적 위치, 경제력 등은 독일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도적인 강대국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 독일은 우리 책임을 감당하기 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것이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