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왼쪽)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이 8일 앙카라에서 만나 흑해 봉쇄로 인한 곡물 공급 차빌 문제에 대해 논의함 뒤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앙카라/EPA 연합뉴스
“곡물 외에 우크라이나에서 뭘 훔쳐 누구에게 팔았나!”
8일 터키 앙카라에서 ‘흑해 봉쇄’로 인한 식량위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과 회담을 마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진지한 얼굴로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서서히 끝나가던 무렵, 좀처럼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공영방송에 소속된 무슬림 우메로우 기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우크라이나 공영 티브이에서 왔다. 정말로 질문을 하고 싶다”며 라브로프 장관에게 준비된 ‘질문 폭탄’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기자의 뜻하지 않은 습격에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라브로프 장관은 2004년부터 러시아 외교장관이라는 쉽지 않은 자리를 지켜온 관록을 과시했다. 곧바로 여유 있는 미소를 되찾으며 “당신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언제나 무엇을 훔칠까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목표는 네오나치 정권의 억압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곡물 수출을 방해하는 게 아니다. 항구에서 (곡물이) 나오기 위해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명령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
회견 이후 <아에프페>(AFP) 통신과 만난 우메로우 기자는 질의응답 시간 내내 손을 들었지만 주최 쪽이 질문 기회를 막고 있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는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드넓은 곡창지대를 보유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세계에 밀·옥수수 등 곡물을 공급해온 주요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2020년 기준으로 전세계 밀 수출량의 17.6%, 우크라이나는 8% 정도를 감당했다. 하지만 2월 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오데사항 등 흑해의 주요 항구가 봉쇄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로 가야 할 곡물이 항구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가 항구 봉쇄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주변 기뢰를 제거하고 서구 나라들이 자신들을 향한 경제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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