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이 8일 앙카라에서 만나 흑해 봉쇄로 인한 곡물 공급 차빌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앙카라/EPA 연합뉴스
세계적 식량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흑해 항구 봉쇄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가 아조우해 쪽 항구 주변의 기뢰를 직접 제거한 뒤 곡물 수출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8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과 흑해 봉쇄로 인한 식량위기와 관련해 회담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항구 주변의) 기뢰를 제거해 선박이 드나들 수 있게 해도 러시아가 그 상황을 특별군사작전을 위해 이용하지 않겠다고 보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곡물 상황과 식량위기는 아무 관계도 없다”며 현재 상황을 러시아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서구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또 이번 전쟁을 통해 점령한 아조우해의 베르댠스크 항구 연안에서 기뢰 제거를 한 뒤 며칠 내로 곡물 선적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조우해는 크림 반도 등으로 둘러싸인 흑해의 북동부 해역이다.
러시아는 그동안 곡물 수출이 재개되려면 우크라이나가 항구 주변의 기뢰를 제거하고 서구의 대러시아 제재 해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우크라이나 등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자 자신들이 점령한 항구 주변의 기회를 직접 제거해 수출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앞서, 7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도 러시아가 점령한 마리우폴과 베르댠스크항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며 “최고 지도자(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대로, 우리는 이 항구들에서 곡물을 선적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크라이나 곡물은 흑해 서부 오데사항 등을 통해 수출되고 있어 러시아의 이번 조처로 곡물 공급 차질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곡물 선적에 앞서 항구 주변 기뢰 제거의 책임은 우크라이나에 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 문제를 풀기를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거듭 비난했다.
터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을 중심으로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차우쇼을루 장관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위해 여러 방안들이 나왔고, 최근에는 유엔-러시아-터키 사이에 만들어진 메카니즘을 만들자는 계획도 있다. 우리는 이를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곡물을 수송하는 선박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추가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터키가 언급한 유엔 주도 메카니즘이란 우크라이나에 저장된 2200만t의 곡물 수출을 위해 안전한 해로를 확보한 뒤 이를 실어 나르는 곡물 수출선을 터키 해군이 호위한다는 것이다. 차우쇼을루 장관은 나아가 “우크라이나 곡물을 국제 시장에 내놓으려면, 수출을 막는 장애를 제거해 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합리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며 미국과 유럽 등도 러시아가 취한 조처의 대가로 경제 제재를 일부 해제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격 위협 등을 들어 기뢰 제거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오데사 당국 대변인인 세르히 브라츄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성명에서 “우리가 오데사항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러시아 함대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며 기뢰 제거가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도 회담 시작 전에 성명을 내어 “우리 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한 통로를 만들 수 있게 유엔과 우호국들과 협의하고 있다. 단 러시아가 이 통로를 활용해 오데사 등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문제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모든 관계국이 참가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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