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수브라마니암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장관(왼쪽부터),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머리스 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외교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도쿄/AP 연합뉴스
중국과 세계의 불화가 깊어가고 있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와 메콩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갈등 지대는 광활하다. 중국이 “떼어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라며 내정간섭으로 규정한 홍콩, 티베트, 신장 인권 문제는 불화의 뿌리에 이념적 차이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전방위적 다발성 불화’라 부를 만하다.
경제력을 발판 삼아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중국은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권과 국익을 앞세워 주변국과 충돌을 불사하는 중국의 이른바 ‘전랑(늑대전사) 외교’에 대해 상대국은 ‘강압’으로 인식한다. “더 늦기 전에 중국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갈수록 힘이 실리는 이유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참여하는 비공식 전략포럼인 ‘4자 안보대화’(쿼드)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같은 다자안보동맹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쿼드는 ‘아시아판 나토’가 될 수 있을까?
“냉전적 사고와 대결을 부추기며, 각국을 지정학적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쿼드를 “거대한 안보 위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새로운 냉전을 부추기는 것은 시대와 동떨어진 인식”이라며 “이른바 ‘아시아판 나토’가 추진된다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의 이런 발언은 쿼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이 불과 2년여 만에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그는 2018년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쿼드에 대해 “언론에서나 관심을 끌 만한 과장된 주장”이라며 “바다 위의 물거품이 눈길을 끌 순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지 않은 때였다. 중국에 대한 세계의 시각도, 세계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지난 2년여 동안 크게 바뀌었다.
쿼드는 2007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제안으로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그해 연말 집권한 케빈 러드 호주 총리가 이듬해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해 불참을 선언하면서 긴 동면기에 들어섰다. 쿼드는 10년 뒤인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인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미국은 그해 말 펴낸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쿼드로 상징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 진영과 압제 세력의 세계관이 지정학적 대결을 펼치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밝힌 셈이다. 쿼드를 나토와 같은 다자안보동맹으로 격상시키겠다는 구상이 최근에야 공식화했지만, 쿼드 재개 시점부터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군사·안보 동맹은 위협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공유하는 전략적 이해를 전제로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1949년 4월 북미와 서유럽 12개국이 체결한 북대서양조약에 따라 창설된 나토 역시 마찬가지다. 나토는 외부 세력이 회원국을 공격하면 상호 방위하는 집단방어체제가 핵심이다.
나토의 출발은 ‘소련’이란 공통의 위협에 대한 집단대응이었다. ‘아시아판 나토’에 대한 논의 역시 ‘중국’이란 공통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공유에서 시작된다. 나토 설립은 냉전의 출발이기도 했다. 아시아판 나토의 등장도 새로운 냉전의 출발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위협에 대한 인식 공유가 곧바로 일치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 국방·안보 전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지난 7월 말 펴낸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쿼드 참여국들이 합의한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점뿐”이라고 짚었다.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게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 회담이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쿼드 참가국이 중국 공산당의 착취와 부패, 강압에 맞서 협력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최국인 일본을 포함한 나머지 3개국 외교장관은 각각 성명을 내어 중국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한 채 “규칙에 기초한 질서, 항행의 자유, 역내 갈등의 평화적 해결”만 강조했다. 당시 회담에선 공동성명도 내지 못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사태부터 외교·안보·인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가장 근접한 행보를 보이는 건 호주다. 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거세졌고, 외교정책에 대한 노골적 보복도 잇따르면서 중국에 대한 호주의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편으론 중국의 경제적 보복을 우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쿼드 격상을 통한 국제적 위상 강화를 원하는 게 호주의 현주소다.
일본은 이른바 ‘보통국가’를 추구한다. 갈수록 흔들리는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목표도 있다. 문제는 두가지 목표 모두 중국의 도움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구나 쿼드의 나토화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일본을 전제로 한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를 추구해왔다. 13억 인구를 보유한 인도 역시 강력한 민족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자력으로 ‘초강대국’이 되기를 원한다. 최근 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유혈사태까지 겪으면서 미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새지만,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인도의 무기체계가 러시아산을 중심으로 꾸려진 탓에, 아시아판 나토 참여를 위해선 무기체계를 전반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점도 골칫거리로 거론된다.
미국의 의지와 능력 사이의 괴리도 문제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나토를 포함한 동맹국을 홀대해왔다. 나토 회원국들은 상호방위공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헌장 제5조를 지속적으로 거부해왔다. 쿼드의 아시아판 나토 확장론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나토와 쿼드 사이엔 한가지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경제는 이른바 나토와 서구의 경제권과 분리돼 있었지만, 중국과 쿼드 회원국의 경제는 세계적 산업 공급망 속에 긴밀히 연계돼 있다. 쿼드의 나토화를 추진하는 미국이 노골적으로 ‘탈동조화’(디커플링)를 거론하며, 중국을 제외한 산업 공급망 재구축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집단안보체제 구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냉전 초기인 1954년 필리핀·타이를 비롯해 미국·영국·프랑스·호주 등 8개국이 참여해 ‘반공’을 내걸고 설립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가 그것이다. 미국 외교관이자 소련 전문가인 조지 캐넌의 ‘봉쇄 전략’에 기반해 만들어진 이 기구는 별다른 활동 없이 1977년 공식 해산한 바 있다.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가 되려면, 장기적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참여도 필요하다. 이들 국가가 중국에 대항하는 다자안보기구에 참여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중국의 위협이 ‘임박하고 현저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미국의 대선 결과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선 쿼드가 아시아판 나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중국에 대한 일정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국이 국제사회와의 불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로 모아진다. 국제사회가 중국에 대해 느끼는 위협의 정도가 클수록, 아시아판 나토의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둥 푸단대 교수는 지난 11일 관영 <글로벌 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패권 국가인 미국과 신흥 발전국인 중국의 전략적 경쟁은 피할 수 없고, 따라서 중국도 이에 맞춰 영향력을 적절히 행사해야 한다”면서도 “지역 질서의 역학관계를 잘 헤아리고, 특히 (자유·인권 등) 이념적인 측면에서 세계 각국과의 관계를 더 정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접근만이 ‘가치와 문화의 차이’를 내걸고 중국을 배제하는 동맹체제를 만들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달리 말해, 쿼드의 아시아판 나토화 가능 여부는 중국의 향후 행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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