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 80대 여성 치료하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 8일전에 중국 매체 인터뷰 “해야 할 일 했을 뿐” “도망자 되고 싶지 않다”며 일선복귀 의지 다져
온라인서 추모 물결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우한중심병원·국가위생건강위도 애도 표명 국가감찰위 “리원량 의사 문제 전면 조사”
리원량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사진과 꽃다발을 놓아둔 우한중심병원의 한 분원 입구. AFP 연합뉴스
중국을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을 지난해 12월 말 처음으로 경고했던 우한중심병원 의사 리원량(34)이 7일 새벽 감염증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리원량은 6일 밤 9시30분께 심장 마비 증세를 보였다. 혈액을 몸 밖으로 빼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 안으로 넣어주는 체외막산소공급(에크모)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7일 새벽 2시58분 끝내 숨졌다”고 전했다.
우한중심병원 쪽은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불행히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리 병원 리원량 선생이 끝내 세상을 떠났다. 깊은 애도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도 성명을 내어 애도를 표했다. 국가감찰위원회는 이날 “조사팀을 우한으로 보내 의사 리원량 문제를 전면 조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넘쳐났다. 한 누리꾼은 “뭘 더 할 수 있을까? 그저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애통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중국 우한중심병원의 의사 리원량이 7일 숨졌다. 리원량 웨이보 갈무리
1985년 중국 동부 랴오닝성 진저우에서 태어난 리원량은 우한대 의대를 졸업한 뒤 우한중심병원에서 안과의사로 일해왔다. <남방도시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그는 지난해 12월30일 오후 5시께 의대 동창생 단체 채팅방에 “화난수산시장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 7명이 나왔다. 지금 우리 병원 응급의학과에 격리돼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30분여 뒤 다시 글을 올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됐다. 현재 바이러스의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아직 외부에 유출하지는 말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염 예방에 신경 쓰라고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현직 의사인 그의 동창생들은 이때부터 마스크와 방호복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당부했다. 감염증 창궐로 우한에서 의료진의 희생도 잇따랐지만, 그나마 리원량의 ’경고’로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지난 1월3일 리원량은 공안당국의 호출을 받았다. 온라인에 거짓 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였다. 공안당국은 혐의 내용을 반성한다는 내용의 자술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반성을 요구하는 자술서를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은 구금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순순히 서명하고 병원으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비극은 1월8일 시작됐다. 이날 그는 만성 녹내장을 앓고 있는 82살 여성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는 병원 도착 당시 발열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리원량도 감염 예방을 위한 방호장구를 갖추지 않은 채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이 환자는 이튿날부터 열이 올랐고,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양쪽 폐 감염 증세가 확인됐다. 리원량도 1월10일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튿날엔 고열 증세를 보였다. 1월12일 입원한 그는 지난 24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의사 리원량씨가 지난 3일(현지시간) 공안 파출소에서 서명한 '훈계서'. 리원량 웨이보 갈무리
감염증이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리원량의 최초 경고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내부고발자’이자 ’의인’이라고 불렀다. ‘베이징 감은공익기금’이란 단체는 1월31일 “수많은 이들이 조기에 바이러스 방역에 나설 수 있도록 기여했다”며 병상의 리원량에게 10만위안(약 17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정작 리원량은 지난달 30일 중국 매체 <차이신>과 원격 인터뷰에서 “건강한 사회라면 하나의 목소리만 나와선 안된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담담해 했다. 중환자실 이송 이후에도 의식은 또렷했던 그는 지난 1일 <남방도시보>와 한 인터뷰에선 “위독한 상태는 아니다. 폐 기능이 정상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병세를 낙관한다. 완치되면 곧바로 일선으로 복귀하고 싶다. 감염증이 창궐하고 있는데, 도망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리원량의 부모도 감염증으로 우한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둘째를 임신 중인 그의 부인과 첫 아이는 우한을 떠난 상태다. 숨지기 열흘 전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지했던 그는 사망 전날 그간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후송됐다. 입원하고 있던 병원에 있던 에크모 장치가 감염증 중점병원인 진인탄병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에크모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의 폐가 이미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의료진들은 리원량의 심장이 멈춘 이후에도 3시간 동안 회생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리원량은 언젠가 ‘평범한 사람이 되자. 복잡한 세상사를 바라보면서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싶다’는 새해 소망을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음미할 수 없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도 말했다. … 그의 소셜미디어 위챗 계정 프로필에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월간 <인물>은 7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리원량의 동창생들 말을 따 이같이 전했다. 리원량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때, 그의 친구들은 접근이 차단된 그의 병실이 있는 병동에 모여 있었다. <인물>은 “보통 사람 리원량,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혔지만, 정작 스스로는 더는 밝힐 수 없게 됐다”고 애도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