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굳게 닫혀 있는 철문 위로 한때 ‘응원’ 메시지가 붙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19~20일 잇따라 몇차례 찾아간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전 사진들을 보면 철문에 응원 메시지가 잔뜩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떼어낸 자국만 지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노란색 간판에 유성매직으로 쓴 “홍콩 힘내라, 언론 자유, 사상 자유”라는 중국어, “당신은 안전할 것이다”라는 영어 메시지 등이 이 작은 서점에 쏠렸던 관심을 짐작게 할 뿐이다.
같은 건물 사람들 외에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래층 약국 직원은 “거기 문 닫은 지 1년도 넘었다”고 말했다. 문 앞에는 각종 정간물과 세무·환경 관련 관공서 통지문들이 쌓여 있었지만, 그 양으로 봐서는 누군가 정기적으로 우편물을 수거해 가는 듯했다. 밖으로 난 창문이 없어 서점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2015년 10월 이 서점 점장 람윙키(62)가 실종됐다. 지난해 6월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실종’ 경위를 설명했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중국 선전에 갔다가 갑자기 중국 공안에 붙잡혔고, 수갑이 채워지고 눈가리개까지 씌워져 저장성 닝보로 옮겨졌다. 작은 방에 구금된 채 책 저자와 구매 고객들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같은 질문이 되풀이되는 조사가 몇달간 이어졌다. 도중에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사과'를 강요받기도 했다.
그는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 실종 사건의 사실상 유일한 증언자다. 1994년 이 서점을 창업한 람윙키는 2014년 거류전매라는 출판사에 서점을 매각하고 운영만 맡고 있었다. 2015년 10~12월 거류전매의 주주인 구이민하이(53), 리보(52), 뤼보(47), 직원인 청지핑(34) 등이 모두 실종됐는데, 중국에 가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리보·뤼보·청지핑은 지난해 3월 홍콩으로 돌아왔지만 모두 입을 닫고 있다.
구이민하이는 아직 소식이 없다. 구이의 딸 안젤라는 아버지가 납치됐다며 홍콩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한다. 오는 7월1일 취임할 캐리 람 행정장관 당선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안젤라를 동정한다”면서도 “홍콩 사람은 내지(중국)에서 일어난 일에 도전할 수 없다. 내지 제도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에 붙잡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홍콩 사람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실종됐던 서점 관계자들 중에 람윙키와 뤼보, 청지핑은 서로 다른 이유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붙잡혔지만, 구이는 타이에 있는 아파트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갔다. 리보는 홍콩 서점에서 책을 가지러 고객과 함께 창고에 갔다가 사라졌다. 구이와 리보는 각각 스웨덴, 영국 국적도 갖고 있다. 이제 홍콩인들은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인신의 자유까지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홍콩인들이 보기에 ‘일국양제'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 정부는 “람은 중국 공민이며 중국 법률을 어겼으므로 중국 정부는 처벌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붙잡혀 간 이유는 거류전매가 만들고 서점이 판매한 각종 중국 정치 관련 서적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관계자들의 실종으로 문을 닫기 전까지 이 서점에선 <시진핑과 그의 연인들>·<시진핑 20년 집권의 꿈>·<2017 시진핑 붕괴>·<톈진 대폭발 내막>·<장쩌민 연금> 등 제목만으로도 중국 당국이 충분히 껄끄러워할 민감한 책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사건 발생 전에는 <시진핑과 6명의 여인>이라는 책 출간을 준비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에는 이 서점과 거래했다는 등의 이유로 중국 내 출판업자들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홍콩의 번화가 코즈웨이베이 상가 2층에 위치한 코즈웨이베이 서점.
흥미로운 것은 이런 책을 즐겨 사 간 독자들의 ‘정체’다. 마응옥 홍콩중문대 교수(사회학)는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주 고객은 홍콩에 온 대륙(중국)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 지역에 위치했다”고 말했다. 호기심에서 사는 이들도 있었고, 정보를 얻기 위해 사 가는 중국 관료들도 있었다고 한다. 마 교수의 분석은 코즈웨이베이 서점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인민공사’라는 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서가에서도 올가을 19차 당대회 전망을 다룬, 중국의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책이 많이 눈에 띄었다. <누가 시진핑의 상대인가>라는 제목으로 고위급 정계 인사들의 관계도를 정리한 책도 있고, 최근 중국 지도부 부패 의혹을 제기한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의 폭로가 내밀한 권력투쟁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설명한 책도 있었다.
‘인민공사’ 직원 라이폭에게 코즈웨이베이 서점 사건의 영향을 묻자 “민감한 책들의 출판량이 줄었다. 예전엔 일주일에 몇권씩 나왔는데, 지금은 한달에 2~3권 정도 되는 것 같다”며 “우리는 책을 파는 것뿐이지만, 저자들과 관계가 밀접할 수밖에 없는 출판사들은 그 사건으로 더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이 최고 지도자로 확정되기 전인 2012년처럼 전망이 불투명할 때 이런 책의 수요가 늘지만, 시 주석의 권력이 확고한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라고 했다.
지난해 홍콩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한 뒤 코즈웨이베이 서점 점장 람윙키는 줄곧 미행과 위협을 느껴왔다. 그래서 늘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그는 최근 <닛케이 아시안 리뷰> 인터뷰에서 홍콩 내 민주주의 활동가들의 후원을 받는 새로운 코즈웨이베이 서점이 올해 하반기 대만 타이베이에 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람은 새 서점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했다.
“새 서점은 저항의 상징이 될 것이다. 코즈웨이베이 서점이 늘 그래 왔듯이.”
홍콩/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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