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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재갈물린 ‘문혁’의 진실 세상밖으로

등록 2007-04-15 21:22

후제
후제
독립영화제작자 후제의 다큐 ‘나는 비록 죽었지만’
학생들에 맞아 죽은 아내 사진
40년간 보관한 역사학자 인터뷰

중년의 여성은 벌거벗은 채 누워 있다. 피가 엉긴 머리칼과 사후경직의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그가 이미 숨졌음을 말해준다.

중국 독립영화제작자 후제(49·사진)의 다큐멘터리 〈나는 비록 죽었지만〉(我雖死去)은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의 공개로부터 시작한다. 이 사진 속 주검의 주인공은 1966년 문화대혁명 때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맞아 죽은 교사인 볜중윈이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대학 교수와 교사들의 죽음의 시작이었다.

그의 주검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사진으로 찍고 아내가 남긴 모든 걸 40여년 동안 보관해온 사람은 그의 남편 왕징야오(85)다. 왕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역사학자다. 이 작품은 왕이 역사학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 있다.

후제가 왕징야오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들머리에서 후제는 “아내의 주검을 사진으로 찍으며 당신은 커다란 정신적 외상을 입었을 걸로 보입니다”라고 말한다. “당연하지. 목적은 분명했어. 역사에 정확한, 진실된 기록을 남기겠다는 것.”

당시 중국에서 고위 당·정 간부의 자제들이 다니던 ‘황가 학교’로 유명한 베이징사범대학 부속중학의 교감이던 볜중윈은 1940년대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뒤 타이항산 전투에도 참가했다. 남편 왕은 1940년대의 ‘급진적 민주화 운동가’였으며 ‘직업적 혁명가’가 되는 게 꿈이던 역사학도였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터진 뒤 홍위병이 거리를 휩쓸고 다니면서 볜중윈은 출신성분이 ‘대지주 계급의 딸’이라는 이유로 ‘자본주의로 달려가는 반동분자’로 몰려 ‘비판투쟁’의 대상이 됐다. 여기서 홍위병이란 그가 재직하던 학교의 열 몇 살짜리 여중생들이었다. 볜은 마오쩌둥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발표한 1966년 8월5일,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었다. 못을 박은 각목에 머리와 어깨 등을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게 사인이었다.

남편 왕징야오의 ‘기록’에 대한 헌정이기도 한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나 정작 중국에선 관객을 만날 수 없게 됐다. 이 작품은 오는 6월12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열릴 예정이던 ‘윈즈난 다큐멘터리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으나, 당국은 이 작품의 상영을 금지하면서 영화제조차 봉쇄했다고 홍콩 〈평과일보〉가 5일 보도했다. 중국에서 문혁의 진실은 아직도 재갈물려 있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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