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저녁 홍콩의 거리에 최대 친중파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 소속 입법의원 후보자의 선거 공보물이 내걸려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 바뀐 선거법에 따라 처음 실시되는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홍콩 공안당국이 잰 걸음을 놀리고 있다. 범민주 진영이 배제된 채 선거가 실시되면서 투표를 거부하거나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지 않아 무효표를 만드는 등 ‘소극적 저항’의 싹까지 자르기 위해서다.
16일 <홍콩방송>(RTHK)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홍콩 반부패 수사기구인 염정공서(ICAC)는 전날 투표 거부나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지 않는 백지투표를 하라고 촉구한 혐의로 22살~58살 남성 3명과 여성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온라인 게시물을 공유한 혐의(선거법 위반)를 사고 있다.
염정공서는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6명이 같은 혐의로 체포된 바 있어, 19일로 예정된 입법회 선거에서 ‘투표 거부’ 또는 ‘백지 투표’ 를 독려한 혐의로 체포된 홍콩 시민은 모두 11명으로 늘었다.
앞서 홍콩 법원은 지난달 29일 염정공서가 청구한 테드 후이 전 입법의원과 야우만춘 전 구의원 등 2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망명한 후이 전 의원은 “사상 최대 규모의 무효표를 만들어 압제에 맞서자”며 ‘백지 투표’를, 영국으로 망명한 야우 전 의원은 “가짜 선거는 참여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며 ‘투표 거부’를 각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촉구한 바 있다.
당시 염정공서는 “홍콩 안팎에서 벌어진 선거 관련 행위는 모두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3년형 또는 20만홍콩달러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경무처장(경찰청장) 출신인 크리스 탕 보안국장은 전날 <홍콩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입법회 선거에서 ‘투표 거부’나 ‘백지 투표’를 독려하는 행위는 선거법뿐 아니라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콩 경찰당국은 선거 당일 620여곳에 이르는 투표소에 사복경찰을 포함해 1만여명의 경찰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앞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3월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을 내걸고 선거법을 고치면서, 기존 70명이던 입법의원이 9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지역구 의원은 35명에서 20명으로 되레 줄었다. 또 행정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인 국가안전위원회가 후보자의 ‘애국심’과 ‘준법의식’ 등 출마 자격을 심사하도록 해 범민주파 정치인의 출마가 제도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한편, 공안당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밀려 지난 6월24일 자진 폐간한 친민주·반중국 성향의 <빈과일보>의 모회사인 넥스트미디어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인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창간 사주이자 홍콩 시민사회 원로인 지미 라이(74)에겐 지난 13일 불법집회 혐의로 징역 13개월형이 더해졌다. 그는 별도의 불법집회 혐의로 징역 20개월형에 처해져 이미 수감 중이다. 라이와 <빈과일보> 전임 편집·경영진 6명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된 상태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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